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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조선시대 성소수자와 세월호 … 그 사이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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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왼쪽부터 강상중(도쿄대), 김기창(고려대), 김항(연세대), 김호(경인교대), 박상훈(후마니타스 대표), 이충형(경희대), 임태연(한양대), 최정규(경북대), 홍성욱(서울대) 교수.

예외 - 경계와 일탈에 관한 아홉 개의 사유
강상중 외 지음
문학과지성사, 324쪽, 1만5000원

『조선왕조실록』의 ‘세조실록’에는 조선 최대의 섹스 스캔들이라 불리는 ‘사방지 사건’이 나온다. 사방지라는 노비가 한 여승과 정을 통하고, 세도가의 딸까지 임신시켜 양반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일이다. 기록에 따르면 사방지는 어렸을 적부터 여자 옷을 입고 자랐지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양성인이었다. 사대부들은 사방지를 위험한 존재로 여기며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조는 “억지로 일을 밝히려 하지 말라”며 그를 외방 고을의 노비로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양성인 사방지는 전통사회 조선의 ‘음과 양’이라는 인도(人道)를 어지럽히는 ‘예외’였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는 사방지를 예로 들며 인류 역사 속에서 ‘정상적인’ 것과 차이를 보이는 ‘예외적인’ 인간이 어떤 취급을 받아왔으며 이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고찰한다.

 예외는 과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천동설이 대세였던 시절, 지동설은 예외적인 주장이었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외가 등장하고, 이 예외가 경쟁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며, 과학자 사회가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토머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홍 교수 외에 강상중·김기창·김항·김호·박상훈·이충형·임태연·최정규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 9명이 ‘예외’라는 화두로 현대사회를 풀어낸 책이다. 기획자인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서문에서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며 ‘예외’라는 주제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예외는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탐침봉”이라 규정하며 두 사건으로 인해 “일본과 한국 사회가 해방 혹은 전후 70년 동안 익숙해진 지금까지의 일상적인 풍경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지점에 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동안 당연시했던 사회의 모습이나 존재방식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의 민낯을 대면한 경험은 깨달음과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방지처럼 예외로 여겨졌던 존재를 포용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자유, 권리의 확장과 궤적을 같이 한다. 결국 예외는 “무조건 배척해야 할 현상이 아니라 인류와 자연의 미래를 여는 가능성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칙을 무시하지 말고 이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4월부터 문학과지성사가 두산아트센터와 함께 진행 중(6월 29일까지)인 두산인문극장 강연회를 글로 옮겼다. 덕분에 쉽지 않은 주제가 마주보고 설명을 듣는 듯 명쾌하게 다가온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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