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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에게 위협 될 가스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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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엄격하게 말해 러시아는 선진 산업국이 아니므로 G8에 포함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서방 선진국들은 러시아의 향후 정치.경제개혁을 고무한다는 뜻에서 G8에 넣어줬다. 또 전통적으로 군사 강국인 러시아의 위상을 인정하는 차원이었다.

가스 공급 중단을 통해 오렌지혁명을 일으키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를 벌 주려던 푸틴의 시도는 충분히 논리적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적대적이고 서방과 새 동맹을 맺으려 한다면 모스크바가 에너지를 특별가에 공급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렌지혁명 뒤에는 이를 지지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한 미국 NGO가 있었다. 직접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미국 정부도 연루돼 있다. 러시아는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으나 몹시 못마땅해했다. 과연 부시 행정부나 미국 의회라면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구가 선거에서 공화당을 패배시키기 위해 워싱턴에 사무실 차리는 것을 두고 볼 것인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놀랍게도 푸틴은 지난해 말까지 자신의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머물던 서방 NGO를 내버려뒀다. 물론 서방은 러시아의 언론 탄압에 대해 우려했으나,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여기고 이를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키)에 대한 푸틴의 공격은 월스트리트를 분노케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시각도 많았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해될 만하고 정권을 유지하려는 '애국적 행위'로 보는 입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인가. 권위주의는 갈수록 도가 심해지고 언론의 자유도 약화되지 않았는가. 그동안 많은 이가 푸틴이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의 국제정치 감각과 장악력이 의심스럽다.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스 공급을 끊고 우크라이나로의 수출을 막아도 서유럽이나 미국이 가만있을 것이라고 오판한 것 같다. 그는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역시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일로 서방 국가들은 모스크바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는 상업적으로 신의를 지켜야 할 가스프롬(Gazprom.러시아 국영가스회사)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이는 앞으로 심각한 정치적 반격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러시아 에너지를 서유럽에 공급하기 위해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부터 많은 이가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었다. 그때 소련은 정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에너지 공급은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는 외국에 내다 팔지 못하면 러시아에는 별 쓸모가 없다. 그들은 어쨌든 가스를 팔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 계산된 공급자의 보이콧은 자멸을 초래할 수 있다. 서방 국가들에도 문제는 있다. 대부분의 서방국가가 에너지 자원의 개발과 다양화를 소홀히 해왔다. 그러나 가스프롬의 가스를 공급받는 어떤 나라도 지난주에 일어난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나라가 러시아의 가스 수출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푸틴에게는 이것이 또 하나의 위협이 될 것이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