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고맙다! ‘골목 끝 U턴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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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이 대중화되기 전엔 취재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큰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내비 대신 전화로 취재장소를 확인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삼각지 방향으로 이태원역 3번 출구를 지나서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온 다음 좌회전을 하면 작은 놀이터가 나옵니다. 거기를 지나 30m 정도 더 오시면 왼쪽으로 1층에 편의점이 있는 3층짜리 대리석 건물이 있는데, 거기 2층입니다. 못 찾으시면 다시 전화주세요.”

대충 적은 메모지를 보면서 퍼즐을 맞추듯이 취재 장소를 찾아갑니다. 한 번에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고, 열번 중의 서너 번은 숨바꼭질 하듯이 같은 곳을 뱅뱅 돌고 돌아 취재원을 만납니다. 이산가족도 아닌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 이 날도 그런 날이었을 겁니다. 한남동 어느 골목길을 헤매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습니다. 뒤를 보니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입니다. 후진으로 나가기엔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그때 사진 속 그림판이 보였습니다. ‘골목 끝 U턴 방법’이라 쓰인 그림판에는 차를 돌려 나가는 방법이 알기 쉽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운전이 미숙한 사람이라면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겠죠.

길이 아닌 인생에서도 막다른 골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진 속 그림판처럼 누군가 마음을 돌려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많은 사람이 삶을 가로막은 벽 앞에서 주저앉거나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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