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자유경쟁에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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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서울 근교를 비롯, 전국 56개 시·군 지역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신설을 일체 허가하지 않고 서울·부산등 대도시 지역의 병원개설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을 사전심의 받도록 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유도·권장하여 의료시설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일부 지역의 공급 과잉에서 비롯되는 과당경쟁, 병원 도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83년말 현재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4백65개 가운데 80%가 넘는 3백76개가 도시에 편중되어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병상 수만 해도 도시지역은 1만명당 20·6개인데 비해 농어촌지역은 5·9개에 불과하다.
특히 부천·안양 등 서울 변두리 지역의 병원집중 현상은 두드러져 과잉경쟁 등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행정적인 개입을 통해 이런 문제점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안이하고 관료적인 발상이라고 본다.
병원도 기업인 이상 병원을 세우려는 사람은 사전에 입지조건, 개설 후의 수지 등을 신중히 계산하게 마련이다. 병원이 대도시나 대도시의 주변지역에 집중되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다.
전체 인구의 4할 가량이 사는 농촌 지역에 의료 기관수가 15%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찌됐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도식적으로 의료기관이나·의료요원을 지방에 배치하는 일만으로 의료 불균형이 바로 잡힌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대 정부가 내걸었던 무의촌 일소시책이 실효를 못 거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군 단위 보건소나 면 단위 보건지소에 의료요원을 배치했지만 의료 수요가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응급 환자를 치료할 시설이나 능력이 없어 의료요원으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일도 많았었다.
병원의 대도시 신설을 규제한다고 해도 의료기관이나 의료요원의 상당수가 농촌지역으로 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농촌 지역의 병원이 환자가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설혹 자기가 사는 지역에 병원이 있어도 대도시의 종합병원에만 몰리는 환자들의 심리도 병원의 대도시 집중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행정적으로 병원 신설을 억제하면 개업중인 기존 병원에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란 것도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다.
의료기관의 편중 현상은 어설픈 행정력이 아니라 자유경쟁의 원칙에 따라 시정되는 것이 순리다.
따지고 보면 병원도 일종의 기업인 이상 경영을 잘못하면 도산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보건과 직결된다는 의료기관 특유의 기능에 비추어서 병원의 입지선택이나 경영문제에 대해 개입하는 것은 당국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겠지만 일부지역에 병원이 많이 몰렸다고 해서 일도량단 하듯 규제를 하기로 한 결정은 찬성하기 어렵다.
큰 병원일수록 새로운 의료기술의 도입과 개발로 국민에게 더 좋은 의료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해야겠지만 하나의 기업으로서 병원경영을 건실화 하는 데도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보사부가 할 일은 경영능력 부족으로 흔들리고 있는 의료기관이 제구실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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