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으로 자리 옮긴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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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60) 감독의 호칭은 하루새 ‘단장’으로 바뀌었다. 1995년 삼성화재 창단 감독을 맡은 이후 20년을 한결같이 ‘감독님’으로 불린 그는 “어색하다”며 웃었다.

 그는 남들이 꿈꾸지 못한 많은 것을 이룬 명장이다. 현역 생활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지도자로서 그는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좌우명은 ‘신한불란(信汗不亂·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이다. 좌우명대로 많은 땀을 흘렸고, 19차례 챔피언결정전에서 16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신 감독은 다음달 1일부터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산하에서 삼성 블루팡스 배구단 단장 겸 스포츠구단(축구·농구·배구)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일한다. 신 감독은 “가야 할 때가 된 것”이라며 “내 욕심을 채우려고 더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후임은 그의 곁에서 10년을 함께 한 임도헌(43) 수석코치다. 신치용 단장을 19일 경기도 용인의 삼성화재 배구단 숙소에서 만났다.

 - 부사장 겸 단장이 됐는데.

 “아직은 어색하다.(웃음) 물러날 때가 된 거 같았고,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다른 팀 감독을 맡은 제자들하고 코트에서 만나 인상쓰고 부딪치니까 내가 더 불편하더라. 미련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나는 행복한 감독이었다.”

 -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10번 정도 우승하고 가면 좋았을텐데…(웃음) 올해로 삼성 감독이 된 지 만 20년이다. 작년부터 내부에서 이야기가 있었다. 10년간 함께 한 임 코치도 감독을 할 나이가 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물러나는 거다.”

 - 지난달 OK저축은행과의 챔프전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팀이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내가 오죽했으면 ‘마법에 걸렸다’고 했겠는가. 준우승 해서가 아니고 도대체 이 따위 경기 밖에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자존심도 너무 상하고 선수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자괴감에 사흘간 드러누워서 끙끙 앓았다.”

 - 1년 만 더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텐데.

 “이 악물고 훈련해서 내년에 다시 한 번 붙어보자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다 내 욕심이다. 사실 내가 감독을 계속했다면 임 코치가 떠났을 거다. 사람은 염치와 도리가 있어야 한다.”

 - 가족 반응은 어땠나.

 “집사람이 지난 시즌에 경기장에 와서 제자들하고 경기하는 걸 보더니 ‘그만할 때 된 거 같다’ 고 말하더라. 가족들은 전혀 섭섭해 하지 않는다.”

 - 스승의 날(15일)에 제자들이 찾아왔다던데.

 “마침 그룹에서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저녁에 20명 정도 모여서 식사하고 술 한잔 했다. 내가 ‘임도헌 코치가 이제 감독 할 거다’고 말했더니 신영철 감독(한국전력)이 우스갯소리로 ‘세진아, 감독님 마지막으로 우승하시게 했어야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그러냐’고 하더라. 박장대소하고 나서 계산을 하러 갔더니 김세진 감독(OK저축은행)이 ‘우승도 해서 제가 냈습니다’ 하더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부터 삼성화재를 맡은 신 감독은 실업리그 포함 16번, 프로배구 출범 후 8번 우승을 차지했다. 1997년 슈퍼리그부터 지난 시즌 V리그까지 19번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관리와 전술을 통해 팀을 정상에 세운 그를 사람들은 ‘코트의 제갈량’ ‘배구의 신’이라 불렀다. 국내 프로 종목을 통틀어 신 감독만큼 오래 한 팀을 지휘하며, 많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사람은 없다.

 - 감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훈련이 아니라 질투가 가장 힘들었다. 20년 정상을 지키는 동안 성적을 내지 못하고 그만둔 감독이 30명이 넘는다. 나한테 기분 좋을리 없다. ‘삼성이 돈이 많아서 좋은 선수들 갖고 우승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안타까웠다. 그래도 수용해야 한다. 우승팀 업보 아니겠나.”

 -‘배구의 신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배구 하나밖에 몰랐다. 단 한번도 잘려본 적이 없고, 쉰 적도 없다. 배구의 신보다는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 삼성 야구단 사장을 하다 현장에 복귀한 김응용 감독 같은 경우도 있다.

 “나는 복귀를 안 하도록 지금 일을 잘 하겠다. 배구 불모지에 봉사를 겸해서 갈 수도 있겠지만 다른 팀으로 간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용인=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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