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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앞둔 레이건의 정치포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5월 가전3사가 미상무성에 재심을 신청할때만 해도 한국산 컬러TV에 때린 14·64%의 덥핑마진율이 7%정도로 내려가지 않겠느냐는게 우리 업계·정부의 공통된 기대였고 전망이었다.
미상무성 고위간부도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귀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측이 그런 기대를 걸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조사대상기간이 달라진 점이었다. 14·64%의 덤핑 마진율은 82년7월1일부터 83년3월31일까지 미국으로 선적된 물건이 조사대상이었다. 반면 재심조사대상은 그후 83년10월19일부터 84년4월30일까지였다. 이 기간동안 한국TV업계는 내수가격을 5%정도 내리고 대미수출가격은 4%정도를 올렸다. 그만큼 덤핑률이 줄어든 셈이다.
또 한국업자들은 원심에 반영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설명자료를 방대하게 보완했다.
예를들어 대미수출용 컬러TV의 경우 1백20볼트 전용장치만 채택하고 값이 저렴한 수지 캐비니트를 사용하는데 반해 내수용은 2백20볼트겸용 또는 자동전압조절강치를 쓰고 값이 더 드는 목재 캐비니트 또는 광택수지 캐비니트를 사용하는 점을 자료로 보강했다.
뿐만아니라 원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광고비, 외상할부판매대금 미 회수에 따른 대손비, 아프터서비스비용 등에 관한 자료도 새로 작성했다. 준비한 자료가 트럭으로 수대, 10만건에 이르렀다.
재심신청의 소명자료로서 더 이상 정교할 수 없다는게 가전3사와 그들이 채용한 미법률 사무소 변호사들의 의견이었다.
한마디로 조사대상기간을 보아도 상황이 호전됐고, 자료준비도 더욱 철저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7%선까지 내려갈 걸로 기대했던 덤핑마진율이 최저 20·8%에서 최고 52·5%까지 올라간데 대해 업계와 우리 상공부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반응은 미상무성이 한국측이 제시한 자료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풀이하고있다.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좀더 근원적인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우선 재심실무자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측 재심요구를 반대, 양국 통상장관간의 정치적 협의에 따라 이루어진 재심수락은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6월「볼드리지」미상무장관은 재심신청을 수락하면서 금진호 장관에게 공한을 발송, 『조사관을 2명에서 4명으로 증원하는 것을 비롯해 공정하고 신속한 조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물이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정치적 레벨의 결정이 만사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은 한국적 발상에도 차질이 있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조사과정에서 미 실무자들의 감정을 건드린 대목도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가전3사중 어느 회사에서는 재심 조사관이 원심때와 같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 내한하는 조사관을 바꿔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7월 현지조사를 위해 서울에 온 4명의 조사단은 이 때문에 『근무시간 안에만 조사작업을 하겠다. 시간이 없어 조사하지 못한 부분은 과거자료를 쓰겠다』등 경색된 자세를 보였다. 모회사에 들러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는 서류를 내던지는 소동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측이 이처럼 높은 덤핑마진율을 책정한 것을 전부 감정차원에서만 풀이할 일은 아니다.
한국산 TV에 대한 미정부의 태도를 지켜보면 일관된 정치적 냄새를 느낄수 있다. 83년10월 원심의 예비판정률 3·15%가 84년2월 최종판정 때 14·6%로 껑충 뛴 것이나, 이번 재심의 예비판정에서 도리어 덤핑 마진율이 늘어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금년 11월이 미대통령선거임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미정부와 TV업계는 소나기식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제품과 장차 생산계획 등에 대해 심한 경계심을 품고 있다.
82년 중반까지 연간40만∼50만대이던 대미 TV수출이 83년 한해동안 1백93만대를 넘어서자 미 업계는 생산·고용·이윤이 감소한다는 호소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더구나 한해 내수가 1백30만, 1백40만대에 불과한 한국이 86년에 이르면 6백만대의 생산을 계획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미국은 지금부터 강력한 방어조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심 예비판정의 덤핑마진율이 10월31일까지 내려질 최종판정에서도 변동이 없다면 더 이상 컬러TV의 대미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업계와 정부관계자는 각기 미상무성과의 접촉, 공청회 등을 통해 필사의 설득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이번 마진율이 워낙 높자 미상무장관도 결재를 1주일이상 보류했다한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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