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인구 200만 중 17만이 귀화인 … 다문화 코리아, 고려가 원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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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려사의 재발견
박종기 지음, 휴머니스트
432쪽, 2만3000원

500년 가까운 고려(918~1392)의 역사는 조선에 비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낯설다. 고려사 전문가이자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지금 고려사를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를 그 다원적 특징에서부터 찾는다. 일례로 고려가 건국 이후 약 200년 동안 발해·여진·거란 등에서 받아들인 귀화인은 약 17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12세기 무렵 고려 전체 인구가 200만 명쯤으로 추산되는 걸 감안하면 무려 8.5%에 해당하는 수치다. 특히 4대 임금 광종은 중국 출신 쌍기를 재상으로 삼는 등 귀화인을 여럿 중용하는 개방정책을 폈다. 귀화인들은 고려에서 엘리트 관료만 아니라 기술자로도 널리 활약했다. 이른바 ‘글로벌 코리아’의 면모다. 이뿐 아니다. 신라의 낭가사상이 깃든 팔관회가 불교행사인 연등회와 함께 중요한 축제로 치러진 것, 불교와 유교가 각각 수신(修身)과 통치의 근본으로 공존한 것 역시 다원사회 고려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고려사를 이처럼 다양성과 동시에 새로운 국가로서 통일성을 지향했던 역사로 보고, 이를 주요 사건과 인물에 초점 맞춰 전개한다. 상반된 시각을 담은 여러 시대의 사료를 소개하며 ‘승리자의 역사’ 이상을 읽어내려는 시각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고려 때 쓰인 『삼국사기』가 궁예를 포악한 인물로 묘사했지만 저자는 그를 좌절한 이상주의자로 본다. 100년간의 무신정권(1170~1270) 시기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조선초의 역사가들은 이를 고려왕조 몰락의 계기로 봤다. 이와 달리 저자는 무신정권 붕괴 이후로도 고려가 120여 년이나 지속됐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가 23세에 과거에 급제하고도 30대 후반까지 등용되지 못해 청탁 편지를 쓴 배경도 흥미롭다. 무신정권 때 더 자주 과거를 시행하고, 더 많이 선발해 인사 적체가 심해졌단 얘기다. 그래서 실력자의 추천을 통해야 관리에 등용될 수 있었고, 이는 급제자들을 권력에 길들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자취에 대한 언급도 고려사를 한층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안동(安東)이라는 지명, 이를 본관 삼은 권·김·장씨가 태조 왕건의 명에서 유래했다는 게 한 예다. 별도 항목으로 고려 문화를 설명한 대목도 요긴하다. 팔만대장경에 새긴 글자수가 약 5200만 자로, 조선왕조실록의 5600만 자와 맞먹는다니, 그 엄청난 규모가 다시 실감난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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