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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일도 밥도 잘하는 워킹맘은 신화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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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죄책감은 핑계를 만든다. 예를 들어 출근할 때 그렇다. 말을 갓 시작한 아이가 “엄마, 여기, 집, 있어” 하면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출근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핑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돈도 벌어야 하고, 나중엔 아이도 내가 일하는 걸 좋아할 테니까. 이제야 출근 준비가 됐다. “엄마 갔다 올게!”

 미국의 기고가인 레슬리 베네츠가 봤다면 한마디 했을 거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하며 아이도 기른 여성이다. “그건 완벽한 가정 수호자가 되지 못한 죄책감에 만든 핑계야.” 일하는 여성을 향한 독설로 가득한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의 내용이다. “워킹맘은 완벽함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다.” 대부분 불행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워킹맘은 왜 완벽함을 좇을까. 남들은 꽤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일간지에 난 독일 메르켈 총리의 사진은 완벽했다. 낮에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한 남자를 위해 장을 본다는 해설이 붙었다. 밤낮으로 남을 위해 사는 흠 없는 여성이었다. 많은 워킹맘이 동경하는 그야말로 완전체다. 현실을 둘러보고 곧 좌절하지만 말이다.

 남의 완벽함, 나의 죄책감, 쓸데없는 핑계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방법은 뭘까. 베네츠는 솔직하게 인정하기를 권한다. 예를 들면 일도 가사도 본인을 위해 한다고 인정하자는 거다. 그는 “워킹맘은 일이 주는 매력을 이야기하는 데 주저한다”며 “일은 다른 누가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보면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남편이나 아이만 위해 장을 보는 건 아니다. 베네츠는 또 주위의 완벽한 사례 또한 제대로 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알지 않느냐는 거다.

 그러니 너무 훌륭한 사례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들었으면 한다. 얼마 전 본 인터뷰다. 성공하고 이름도 알려진 남성이었는데 장성한 아들의 질문에 당황했다고 한다. “아빠가 나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었다. 그는 즉시 답했다. “나는 여태껏 나를 위해 일했다. 너도 너를 위해 네 길을 찾아보거라.” 아이의 스트레스 녹는 소리가 들릴 듯한 대답이다. 그리고 솔직하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 ‘직장·가정에서 만점이 되려 했다’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의 전주곡이다. 만병의 근원이다. 워킹맘이 밤낮으로 남을 위해 사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이기적이 되는 편이 낫다. 가족 전체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게 좋아 보인다. ‘일도 밥도 잘하는 워킹맘’은 만들어진 신화다. 신화는 이미 차고 넘친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