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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생각지도

전술핵 배치를 다시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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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되는 집안은 사랑 하나로 화목할 수 있지만 안 되는 집구석은 애정이든 금전이든 자녀든 온갖 이유로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 정의를 좀 더 진화시켰다. “흔히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른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다.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예도 많지만 특히 북한을 바라보노라면 이것이 참 명제임을 절절히 느낀다. 어떻게든 사람 만들려고 을러도 보고 달래도 봐도 일만 저지르는 사고뭉치 동생을 둔 형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 볼품없는 몸 가지고 근육질 동네 아저씨하고 한판 붙어보겠다고 주먹 단련하고, 형 집 밥 축내면서 걸핏하면 그 주먹을 형한테 휘두르며 풍비박산 내겠다고 협박하는 모양새가 딱 그렇잖나 말이다. 요즘 들어서는 자기가 왕초 노릇 하고 있는데 졸았다고 ‘똘마니’를 잔혹하게 두들겼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어느 집안이든 이런 ‘웬수’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들 경험해봤겠지만 골칫덩이 사람 만들기는 당근과 채찍 어느 하나로는 안 된다. 모든 실패 원인을 다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아무리 속 터지고 뒷골 당겨도 으르고 달래기는 계속돼야 한다. 단, 때를 가려야 한다.

 지금은 을러야 할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이 얼마 전 시험발사에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얘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2년 내에 탄도미사일을 잠수함에 장착할 수 있을 거라고 군 당국은 보고 있다. 미사일 탄두에 실릴 것은 명약관화다. 여러 차례 실험에 성공하고 소형화를 위해 기를 쓰고 있는 핵탄두 말고 뭐가 있겠나.

 그들의 너절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날 때 서울시민들이 경악했듯, 그들의 허름한 2000t급 디젤 잠수함이 SLBM을 딱 한 개씩만 싣고 다닌다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걸 참을 수 없다. 바닷속을 누비는 잠수함을 추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단 걸 아는 까닭이다. 북한 미사일에 대비하려고 구축하고 있는 킬체인을 수중으로 확대한다는 국방부 대책은 말은 고맙지만 위로가 안 된다. 잠수함 어뢰 공격에 두 눈 다 뜨고 천안함이 두 쪽 났는데 잠수함을 발견하고 물속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방어한다는 건 공상에 가깝다.

 지금까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조차 무의미해지는 상황이다. 북한이 창을 하나 만들 때 방패는 열 개가 필요하다. 화수분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재정적으로 한계가 없을 수 없다. 독감 환자가 하나 나올 때마다 종합병원을 하나씩 새로 짓는 걸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겠나 말이다.

 그렇다고 쪽박을 깨버릴 순 없지만 핵을 쓰면 북한 정권이 먼저 망할 거란 사실만큼은 확고히 인식시켜줘야 한다. 지금이 딱 그때다. 자위적 핵무장은 난망할 테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전술핵의 재배치밖에 없을 것 같다. 한반도 해역에 미국의 핵탄두 탑재 잠수함을 배치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오바마 행정부를 설득해야 하지만 SLBM 발사 성공으로 상황이 달라졌다면 가능성이 있다. 중국을 이해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온 데 중국의 책임도 없지 않으니 역시 불가능은 아니다.

 물론 어려운 과제고 호들갑을 떤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위험이 하루하루 새로워져 가는데 “북핵 불용(不容)”만 외쳐서 어쩌겠나. 선제적 대응이 북한의 핵개발 야욕을 포기시킬 수도 있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보단 백배 낫다. 그러고 대화를 하면 된다. 인도적 지원과 경협 노력도 계속해야 함은 물론이다. 모든 실패 원인을 찾아 대응을 하는 것만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