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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가부키 배우 231년 만에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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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사카타 도주로가 지난해 12월 28일 자신의 습명행사 후 도쿄 시내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18세기의 전설적 가부키(歌舞伎) 배우 사카타 도주로(坂田藤十郞)가 231년 만에 부활했다."

무덤 속의 사카타가 되살아났다는 뜻이 아니다. 올해 73세의 가부키 '인간 국보'인 일본인 나카무라 간지로(中村雁治郞)가 사카타의 후계자로 공식 결정돼 이름까지 바꾼 것이다. 일본 예술계는 가부키가 지난해 11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에 이은 겹경사로 반기고 있다.

일본의 전통예술이나 장인들의 세계엔 습명(襲名)이란 독특한 제도가 있다. 아버지나 스승의 이름을 물려받아 그 유파의 공식적인 계승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 끌려가 가고시마에 처음 정착한 조선 도공 심수관의 이름이 지금의 15대 심수관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 그 예다.

그런데 사카타란 이름은 1774년 3대 만에 맥이 끊기고 말았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대 사카타는 교토.오사카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가미카타(上方) 가부키를 확립해 도쿄의 이치가와 단주로(市川團十郞)와 쌍벽을 이루는 가부키의 상징이 됐다.

231년 만에 대를 잇게 된 4대 사카타는 극중에서 여성의 역할을 연기하는 '온나가타'(女形)를 대표하는 배우다. 특히 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소네자키 신주'에서의 19세 유녀(遊女) 오하쓰 역은 23세 때이던 1953년부터 지금까지 50년동안 1200차례나 맡았다. 그 사이 그의 부친이 연기하던 오하쓰의 연인 역할은 그의 아들에게 넘어갔다. 73세의 나이로 19세 여성 역할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나이를 의식한 적이 없이 '일생 청춘'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81년부터는 자신이 직접 극단 지카마쓰자(近松座)를 창단해 오사카 가부키의 맥을 이어왔다. 도쿄의 가부키는 무용담 등 호쾌한 줄거리가 많지만 교토.오사카 가부키는 연인들의 동반자살 등 애절한 이야기가 많다. 사카타는 여성 역할뿐 아니라 미남 주인공의 절절한 사랑의 감정 연기를 뜻하는 '와고토'(和事) 로도 유명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도 지난달 3일 교토까지 찾아가 사카타의 습명 기념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다. 사카타는 1994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인간국보'로 선정됐다. 가극단 다카라즈카 배우 출신인 오기 지카게(扇千景) 참의원 의장이 그의 부인이다. 사카타는 지난해 4월 한.일 우정의 해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소네자키 신주'를 공연하기도 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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