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검증했는데 … 총리감 어디 없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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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요즘 청와대 인사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 좋은 총리감 없느냐, 추천 좀 해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난달 27일 이완구 전 총리의 사표가 수리된 뒤 14일로 ‘총리 없는 정부’는 18일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이 깊다”며 “언제 후임 총리를 발표할지 시기를 말할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선 주말에도 인선을 마무리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흘러 나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그동안 ‘도덕성’과 ‘개혁성’을 잣대로 총리 후보자를 물색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적임자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검증 대상자만 자꾸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서 총리 후보로 검증대에 올린 인사만 100명이 넘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지난해부터 정홍원 전 총리의 후임자를 물색해 왔기 때문에 총리 후보가 될 리스트는 넉넉히 확보해 왔다고 한 관계자가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검증 문턱을 넘을 인사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인선에 애를 먹는 이유는 바로 ‘안대희 가이드라인’ 때문이라고 한다. 법조인은 박 대통령이 그동안 선호해온 직업군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지난해 5월 정홍원 전 총리 후임으로 지명됐다. 하지만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5개월 동안 약 16억원을 벌어들인 점이 전관예우 논란을 일으켜 낙마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안 전 대법관은 평생 공직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퇴임 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이 문제가 됐다”며 “고위 공직자 출신이 퇴임 후 로펌에 근무했거나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경우 대부분 안 전 대법관보다 적게 수입을 올린 경우가 드물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여섯 차례 총리 지명 과정을 거치면서 여론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도 후보자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전임 총리 후보자들이 역사관, 전관예우, 자녀 병역 의혹 등의 이유로 낙마하면서 새 총리가 갖춰야 할 요건이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박 대통령이 정치 개혁을 강조하고 있어 검증 기준에 여유를 둘 수 없는 것도 한 요인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후보감은 검증에서 탈락하고, 일부 후보감은 본인이 고사하고 있다고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고르는 눈이 까다롭다기보다는 적당한 사람이 없다는 쪽이 맞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순위 감들은 많다”며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한다는 생각으로 인선한다면 의외로 선택이 빨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박 대통령의 성에 차지 않는 게 문제라고 한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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