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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부터 올리고 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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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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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대가 8급 직원을 공채했단다. 법인으로 독립하기 전 9급 공무원에 해당했던 직급이라고 한다. 44명을 뽑았다. 합격자 명단을 살펴본 보직 교수들은 깜짝 놀랐다. 서울대 졸업생이 12명이나 포함됐기 때문이다. ‘잘나간다’는 말을 듣는 인기 학과도 있었다.

 5급 사무관을 뽑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서울대에도 많다. 그렇지만 7급도 아니고 9급 시험에 도전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다. 김종서 서울대 교육부총장은 “얼마나 취업이 어려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느냐”며 “정년 연장으로 취업 문이 좁아진 탓”이라고 풀이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청년 고용 절벽’이라고 표현했다. 정년 연장으로 청년 취업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통계청 4월 발표를 보면 청년(15~29세) 실업률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이래 최고치(10.2%)다. 국내 30대 그룹의 신규 채용 인원만 봐도 2013년 14만4500명에서 13만 명(2014년)→12만1800명(2015년)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장·노년층은 청년들의 적(敵)일까. 청년들도 언젠가는 늙는다. 청년들은 장·노년층의 자식들이다. 빼앗아봤자 빼앗긴 쪽을 부양해야 하는 관계다. 그럴수록 정교한 사회적 설계가 필요하다.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정치권에 그런 큰 디자인이 있는 건지 걱정스럽다. 당장 눈앞에서 소리치는 이해당사자를 달래고, 표를 얻는 데만 급급한 건 아닌가. 50년, 100년 뒤가 아니라 내년, 내후년의 선거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연금은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먼저 몇 가지를 분명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다.

 국민연금과 다른 특수직(공무원·군인 등) 연금을 계속 따로 갈 것인가. 공무원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게 ‘노후 보장’이다. 연금다운 연금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노후 보장이 어려운 건 국민연금이다. 30년간 평균 월급 300만원에서 연금을 꼬박꼬박 낸 경우를 보자. 공무원이라면 월 171만원을 받는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90만원이다. ‘귀족 연금-용돈 연금’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노조가 국민연금을 올리라는 것도 이런 부담 때문이다.

 물론 공무원연금에는 퇴직금이 포함돼 있다. 기여금도 많다.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다. 재직 시 부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래도 ‘노후 보장’이란 정책 목표는 다르지 않다. 연금 제도의 안정성을 위해 자꾸 고칠 수는 없다. 공무원에 대한 배려는 따로 해주더라도 이참에 통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경과 기간이 얼마가 되건.

 연금 개혁을 시작한 이유가 뭔가. 재정 적자다. 걷는 건 적은데 나눠주는 것만 늘어나서다. 모자라면 빚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은 적자가 나면 국고에서 보전해주도록 만들어놨다. 김대중 정부 때다. 출구가 입구를 걱정하지 않는 구조다. 모럴해저드에 빠지지 않으려면 통합밖에 없다.

 기금을 ‘부과식’으로 바꿀 건가. 아니면 계속 ‘적립식’으로 갈 건가. 기금이 2060년에 고갈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유럽처럼 부과식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적립식은 내가 낸 돈을 은퇴 후 내가 찾는 방식이다. 부과식은 은퇴한 사람들에게 줄 돈을 그때그때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걷어서 충당하는 방식이다. 세금처럼.

 그러니 돈을 내는 사람의 부담이 훨씬 커진다. 지금 은퇴하는 사람은 별로 내지도 않고, 넉넉하게 받아 쓰고, 다음 세대는 허리가 휘게 은퇴 세대를 먹여 살려야 한다. 상황이 어려워져 못 걷으면 못 나눠준다.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하려면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는가. 바닥까지 긁어서 다 쓰고 갈 테니, 나중에 모자라면 걷어서 써라….

 소득 보전 수준은 어느 정도로 할 건가.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40년을 넣어야 한다. 일반 국민이 실제로 일하고 연금을 넣는 기간은 평균 20년을 조금 넘는다. 지금처럼 소득대체율 40%라고 해도 실제로는 23% 정도가 된다. 평생 평균 월 200만원을 받은 사람이 24년을 넣었으면 48만원을 받는다. 국회에서 합의한 대로 50%로 올려야 겨우 60만원이다. 그러니 실질적 효과를 거두려면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장기적으로는 올리긴 올려야 한다. 국민연금을 처음 도입할 때도 70%로 설계했었다. 이것이 구실을 못하면 다음 세대에 부담을 지우기는 마찬가지다. 기초연금, 일자리, 건강보험과도 맞물려 있다. 문제는 출구가 아니라 입구다. 여야 합의대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수 있다. 다만 보험료도 같이 올려야 한다. 국민부터 설득해야 한다. 안 되면 선거 공약에 걸어라. 가뜩이나 취업도 못하는 청년들에게 빚까지 지우며 잔치를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