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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 조각상에서 찾은 위대한 아름다움 '그레이트 뷰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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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미인의 표상은 시대에 따라 변화, 절대적 아름다움은 없어… “본능을 뛰어넘으면 자유가 온다”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제작된 이 작품은 미의 여신 ‘비너스’를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해 주목받았다. 이처럼 아름다움을 향한 내적 투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예언자가 말하기를 야수는 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잔인한 손은 얼어붙었고, 그날 이후 야수는 얼이 빠진 자처럼 되었다.”

고대 아라비아 속담에 나온 이야기 한 토막이다. 재미있는 건 속담 속 야수를 킹콩·뱀파이어·늑대인간으로 바꿔도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성립된다는 것이다. 야수 모두 얼굴이 뽀얀 아름다운 금발 여자를 보고 넋을 잃고 만다.

그리스와 트로이가 전쟁을 벌인 것도 왕비 헬렌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됐다.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는 희곡 <포스터스 박사>에서 트로이의 헬렌을 이렇게 묘사한다. “정녕 이것이 1천 척의 배를 출범시키고 일리움의 까마득한 탑들을 불타게 만든 바로 그 얼굴이란 말인가?”

이처럼 아름다움을 향한 찬탄, 경배, 끌림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폭파범 김현희, 동정 여론에 휩싸인 속사정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아마도 미학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심리학 영역에서 접근할 경우 아름다움을 목도했을 때 사람들의 행동 반응을 살펴보면 된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실험도 많았다. 일례로 경제학자 에른스트 로이들은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얼음물에 손을 담그게 한 뒤 얼음물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지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눈치 챘겠지만 사실 이 실험의 목적은 인내력 테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로이들은 시간을 재는 실험자를 변수로 지정해 이에 따른 실험 참가자들의 반응 변화를 포착하고자 했다. 실험자가 평범한 남성에서 아름다운 여성으로 바뀌자 남성 실험 참가자들은 두 배 가까이 더 긴 시간 동안 얼음물의 고통을 참아냈다. 실험 참가자 일부는 이 아름다운 미녀 앞에서 동상에 걸릴 때까지 얼음물에서 손을 빼지 않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텍사스 휴스턴대 심리학자들은 텍사스 법원이 지난 수년간 판결했던 사건 2235건을 조사해보았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똑같은 죄를 지어도 예쁘고 미소를 자주 짓는 여성은 잘 웃지 않고 매력 없는 여성에 반해 형량을 반밖에 받지 않았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1987년 115명을 흔적도 없는 죽음으로 몰아간 대한한공(KAL) 858기 폭파범 사건의 범인 김현희 씨의 사례다.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이는 북한 미녀 김현희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여성이 그런 범죄를?’, ‘죽이기엔 아까운 얼굴이다. 김일성이 나쁜 놈이지’라며 동정 어린 눈길을 던졌다. 결국 그는 대법원에서 특별사면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된 후 일반인과 결혼까지 한다. 만일 김현희가 우락부락한 외모를 가진 특수공작원이었어도 과연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데이비드 베컴의 속옷, 불티나게 팔린 이유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김현희(당시 25세)가 선거공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당시 대중은 순진무구한 얼굴을 가진 북한 미녀 김현희에게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슬프게도 이러한 현상은 전 인류가 피할 길 없는 하나의 본능에 기인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 본능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주디 랭루와 교수에 따르면 첫 아이를 출산한 임산부 144명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예쁜 아기를 낳은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아기를 안아주고 키스했다.

즉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람에게 더 호의적이며 더 많이 말을 걸거나 더 많은 요구를 들어주고 관대하게 행동한다. 배우 김태희, 한혜진 앞에서 남자들은 더 수줍어하고 더 오버하고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웃는다. 그 이면에는 그들이 자신의 열등감을 보완할 트로피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즉 자신을 보완해줄 가치 측면에서의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운 이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름다움은 힘이고 권력이자 특권이고 자본이며 경쟁력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힘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클까? <미인 경제학>의 저자 다니엘 헤머매시는 다양한 경제학적 연구를 통해 미모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환산해냈다. 외모에 관한 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연구에서 흔히 쓰이는 점수 기준은 ‘5점 척도’다. 실험 대상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눈에 띄게 잘생겼다’를 5점, ‘못생겼다’를 1점으로 해 점수를 매긴다. 1970년대 미국 미시간대에서 18~64세 여성 1495명, 남성 1279명을 상대로 ‘5점 척도’를 사용해 외모를 평가한 결과 최고 점수 5점을 받은 실험대상자는 여성 3%, 남성 2%에 불과했다. 4점과 3점을 받은 실험대상자는 각각 여성 31%, 51%, 남성 27%, 59%로 나타났다. 최하 점수 1점을 받은 실험대상자는 여성 2%, 남성 1%에 불과했다.

특히 이 조사에 따르면 외모가 뛰어날수록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1~2점을 받은 여성의 소득은 평균보다 4% 낮았다. 같은 점수를 받은 남성의 소득 역시 평균보다 13% 낮았다. 반면 4~5점을 받은 여성의 소득은 평균보다 8% 높았고, 같은 점수를 받은 남성의 소득도 평균보다 4% 높았다. 다시 말 해 이른바 예쁜 여성과 못생긴 여성의 소득 차이는 12%, 잘생긴 남성과 못생긴 남성의 소득 차이는 17%에 달한 것이다.

이 수치에 근거한 또 다른 실험 결과를 살펴보자. 평균체중의 사람들이 100만원을 벌 때 비만인 사람들은 86만원을 번다고 한다. 평범한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외모가 매력적인 남성은 최대 128만원을 번다.

유명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아르마니 속옷 광고가 셀프리지스 백화점에 어마어마한 크기로 내걸렸을 때 백화점 매출은 약 150% 수직 상승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외모 프리미엄(Beauty Premium)’이라 부른다. 심리학에서는 ‘맥락 효과(Context Effect)’로 설명하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해 뚜렷한 인상이 한번 형성되고 나면 이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정보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봤을 때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의 경우 첫인상을 좋게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사람에게 불리한 정보는 가치 절하하고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 그렇다면 예쁨과 못생김은 어떻게 나눠질까? 왜 똑같은 신체 구조를 갖고도 어떤 사람은 ‘예쁘다’,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것일까? 진화 심리학에 따르면 인류는 번식과 생존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 외모를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석기시대엔 ‘비만녀’가 최고의 미인(美人)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풍요의 여신 ‘아슈타르테’. 아름다움을 향한 시선은 시대적으로 변해왔다. 척박한 석기시대에선 생존에 유리한 ‘비만’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여겼다.

사람들이 매혹되는 신체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우선 대칭적으로 신체가 발달한 사람(대칭성), 남성은 더 남성적으로 여성은 더 여성적으로 생긴 사람(성적 이형성)이 각광받는다고 진화심리학은 말한다. 왜일까? 대칭적인 몸매는 건강함의 신호다. 또한 여성 대다수는 어깨가 넓거나 키가 큰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남성은 잘록한 허리에 엉덩이와 골반이 넓은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각각 사냥과 생식에 유리한 몸매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호르몬은 면역계와 같이 신체의 다른 주요 기능에 들어갈 자원까지 끌어다 쓰는 ‘비싼’ 호르몬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발달한 신체를 가진 사람은 그만큼 비싼 호르몬을 감당할 수 있는 우수한 유전적 자질을 지녔음을 입증한다는 게 진화심리학의 주장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시선은 시대적으로 변해왔다. 척박한 석기시대를 살던 인간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비만’을 아름답다고 지각했다. 반대로 음식의 공급이 차고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는 ‘말라깽이’를 아름답다고 지각한다. 이렇듯 선사시대 이래 인간의 유전자는 저마다 생존의 지혜를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라는 지각 속에 남긴다.

생존의 흔적이요, 그래서 부와 권력의 증표가 된 아름다움. 우리 뇌는 이런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데 기민하고 예민한 능력을 가졌다. 뇌는 아주 짧은 순간에 사람을 재빨리 판단해서 결정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단 0.15초 만에 아름다움의 여부를 판단한다. 0.15초의 시간을 주든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든지 간에 외모에 대한 판단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 짧은 순간 사람들은 눈에서 시작해 코와 입, 얼굴 형태를 차례로 관찰한다. 심지어 동공 크기나 속눈썹 길이, 좌우 대칭까지 순식간에 파악한 뒤 결론을 내린다. “이 사람, 내 타입이야!”

베스트셀러 <아름다움의 신화>의 저자 나오미 울프의 주장이 주목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울프는 자신의 책을 통해 “여성들이 아이, 부엌, 여성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자 이번엔 아름다움의 신화가 그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의 여성을 포함해 남성들마저 점점 더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됐으며 산업화를 거치자 외모 지상주의는 점점 더 사람들을 옥죄게 됐다는 것이다.

돈, 학력, 권력, 인간관계 등 권력적인 모든 속성은 그 추구가 지나치면 우리의 몸과 마음에 폭력적인 상흔을 남기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40세의 사람이 40세처럼 보이는 것은 실패한 인생일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때문에 자르고, 깎고, 조이고, 바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백설공주의 거울이 깊숙이 자리 잡는다. 이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실험을 살펴보자.

‘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고작 4%

2005년 마크 퀸이 조각한 <알리스 래퍼 프레그넌트>. 양 팔이 없는데다 짧은 다리를 가진 미술가 앨리슨 래퍼의 당당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미용업체 도브는 여성 스스로 자신의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는 미국 연방수사국의 몽타주 기법이 동원됐다. 처음에는 몽타주 전문가가 실험대상 여성이 스스로 묘사하는 외모만을 듣고 몽타주를 그렸다. 이 후 두 번째 몽타주는 다른 사람이 같은 실험대상 여성을 묘사하는 대로 그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몽타주를 비교한 결과 참가한 모든 여성이 두 번째 몽타주를 더 낫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도브 관계자는 “실험 결과 오직 4%의 여성만이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여긴다”며 “대부분 여성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예쁘다”고 밝혔다.

아름다움에 대한 무한대의 추구는 결국 신체를 망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젊은 시절 절세 미모로 스타가 됐으나 나이든 후 성형 중독에 시달리는 것으로 또 다른 유명세를 탄(?) 배우 데미 무어와 맥라이언이 여전히 아름다워 보이는가?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조화(造花)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화(生花)보다 아름답지 않다. 세상은 미인대회가 아니다. 다이어트와 성형은 아름다움에 대한 ‘산업’이지, 아름다움에 대한 ‘도구’가 될 수 없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진화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본능을 뛰어넘으면 엄청난 자유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1965년 영국,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는 팔다리가 기형인 선천성 희귀 염색체 이상을 안고 태어났다. 팔이 없고 다리도 짧았던 그는 생후 6주 만에 친부모에게 버려져 보호시설에서 성장해야만 했다. 앨리슨 래퍼라는 이름도 보육원장이 지어줬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앨리슨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간호사 수잔나가 네 살이 된 그를 정식으로 입양하려 했으나 앨리슨의 친모가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앨리슨은 22세에 짝을 만나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단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아야만 했다.

그에게 사춘기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기였다. 표면적으로 정상인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 예쁘지 않다.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다”며 자기학대를 일삼았다. 남들과 조금이나마 덜 다르게 보이려고 의수와 의족에 집착하기도 했다. 그때 그를 구원해준 것은 다름 아닌 미술이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미술을 뒤늦게 시작한 앨리슨은 브라이튼 대학을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후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앨리슨은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을 봤다. 그 순간 그는 ‘오! 세상에 저건 바로 나잖아!’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의 이런 생각이 현실화됐다. 우연히 그와 인연이 닿은 영국의 미술가 마크 퀸(Marc Quinn)이 앨리슨을 본떠 조각상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2005년 9월 15일 마크 퀸이 조각한 ‘알리스 래퍼프레그넌트’란 제목의 조상(彫像)이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졌다. 조지 4세의 동상이나 역사 속 유명한 장군의 동상이 즐비한 이 광장에 앨리슨 래퍼가 임신한 모습의 나신상이 전시된 것이다. 처음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레 그의 몸을 인정하고 각자가 가졌던 편협한 미(美)에 대한 기준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양 팔이 없는데다 짧은 다리를 가진 앨리슨 래퍼의 당당한 삶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자유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했다.

최근 우리 사회 저변에서도 기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선 ‘그레이트 뷰티’를 추구하는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 일례로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신조어 중에 ‘볼매’라는 단어가 그렇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단순히 외적으로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의미보다는 내적인 성숙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잘 조화를 이룬 사람을 더욱 선호하는 현상을 반영한다.

‘보톡스 예배’를 드릴 것인가? 결정은 당신의 몫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위대한 아름다움은 상류사회의 치장된 화려함이 아니라 시간의 녹을 견뎌낸 늙은 수녀의 얼굴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준다.

이와 관련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은 경제 자본(돈), 지식 자본(자신이 아는 것), 사회 자본(자신이 아는 사람)에 이어 이러한 ‘매력 자본’을 제4의 자산으로 정의했다. 아름다운 용모와 성적 매력, 자기표현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합쳐진 것을 일러 ‘매력 자본(erotic capital)’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볼매’와 더불어 젊은이들에게 유행어가 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를 뜻하는 말)’이란 신조어 속에 담긴 아름다움의 새로운 정의도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칸트가 말했던 ‘지식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적용된 신조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 <그레이트 뷰티>는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황홀한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명 꼴로 급격한 정신적 혼란을 경험한 외국인 관광객이 실려 온다고 한다. 피렌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다는 것이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첫 장면은 ‘스탕달 신드롬(뛰어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 때문에 기절한 한 일본인 사내를 에필로그처럼 잡아낸다. 당신 역시 지상 최고의 아름다움을 곧 맛볼 것이라고 예언하듯이.

영화 속 인물들은 각기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주인공 젭 감바르델라의 65세 생일 파티에는 으리으리한 패션 감각과 미모를 소유한 로마 상위 1% 사람들로 우글거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건만 그들은 더 아름다워지려고 발버둥친다. 그들은 현대의 ‘지하 교회’인 성형외과에서 한 번에 700유로짜리 보톡스를 맞는다. 아니 ‘보톡스 예배’를 드린다.

표면적으로 아름답고 휘황찬란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모든 위대한 아름다움은 상류사회 사람들의 성형, 화장, 부와 보석으로 치장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시간의 녹을 견뎌낸, 세속의 아름다움을 초월한 늙은 수녀의 얼굴과 고대 로마와 피렌체 자체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준다.

그러니 뉴욕 하늘을 수놓은 석양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수화를 건네며 죽어간 야수 킹콩처럼 세속의 아름다움을 초월한 이는 이미 아름다운 생명체가 아닐까. 때론 평생 욕망의 대상으로 살다간 트로이의 헬렌보다 욕망의 주체로 살다간 킹콩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니까.

글=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 1966년생. 서강대 생명공학과 졸업. 고려대 심리학 석·박사. 현재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심영섭아트테라피&상담센터 사이 소장, 한국사진치료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 내 영혼의 순례><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영화치료를 위한 영화수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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