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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류 늘린다고 일본화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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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복후 4O년,한일국교정상화후 2O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의 싯점에서 그간의 한일관계를 우리의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즐검고 기뻤던 일보다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을수 없었던 일이 훨씬 많다. 예를들면 「구보전망언」 「문세광사건」「재일동포북송사건」 「일본이교교과서왜곡사건」등은 모두 한국국민의 해묵은 반일감정을 촉발한 사건이다.
그리고 「정경분리원칙」 「등거리외교」 「무역역조」 「대한편향보도」 등의 말만 들어도 기만했을때에· 느끼는 배신감을 되씹게된다.
이렇듯 양국관계에서 가해음와 피해자를 구태여 가린다면가해자는 일본이오, 피해자는 한국이된다. 왜냐하면 한일간의 관계를 긴장·불편·유착으로 몰고간 사건들이 거의 일본에의해 저질러졌기 때문이다.따라서 한일양국의 역사적·현실적관계에 비추어볼때 한국사람이일본에대해 피해의식을 갖는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뿐아니라 적당한 피해의식은 자기방어본능을 강화하고 경계심을 촉발하는 자기보호수단이기때문에 약한자가 스스로를지겨나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심리적 방패의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다시말해 피해의식이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해악을 미리 막는데 필요한 자구적 메커니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한 국가,한 민족이 다른 국가,다른 민족에대해 갖는 피해의식이란 역사적 감정의 찌꺼기가 틔적된 결과로서 자유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굴절시킬 뿐 아니라 편견,즉 비뚤어진 선유경향(Predisposi-tion) 의 원인이 되기도한다.더구나 피해의식이 어느 한계를 넘어 피해망상증으로 진전되면 외국과의 정상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 뿐아니라 스스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병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솔직이 말해 일본이 오랫동안 계속 가해자였다는 역사적 사실때문에 우리는 어쩔수없이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고 또 이로인해 굴절된 대일감정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속담과 같이 36년동안이나 나라를 잃은 식민지의 백성이되어일제의 압정에 시달렸고,마침내 말과 글, 그리고 이름까지
빼앗겨본 쓰라린 과거가 있기이 일본·일본문화에 대해서는알레르기반응을 반사적으로 나타내거나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츠리고 도사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의식에서비롯한 페쇄적 심리구조가 일본과 일본문화에대한 객관적평가를 저해하고,한일양국간의문화적 교류를 증폭시키는 방안의 논의조차 금기로 만들고 있다는데 있다. 왈본문화를 옳게파악하려면 이를 재평가하지않을수 없는것과 같이 왈본과의정치·경제·문화적 이해를 증진하려면 왈본과의 문화적교류를 증폭하지 않을수 없다.
피해망상증에 걸려 불필요한노파심을 발동할것도 없고 애써 일본과 일본문화를 외면하려 들것도 없다.오늘의 우리가 일본에 대해 대범할수 있는 까닭은 시대와 상황조건이바뀌어 일븐이 한국을 쉽게 넘볼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그것보다 우리 스스로가 변해이제 일본과의 접촉이나 교류에서 파생하는 충격과 부작용쯤은 쉽게 흡수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우리문화는 일본과의 교류를증폭한다해서 곧 퇴색하거나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할 허약한문화가 아니며,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한다해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일본에 동화될 쓸개 빠진 민족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환경적 변화에능동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뿐 아니라 외국문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할 능력을 갖추었다.
나는 문화적 국수주의는 문화적사대주의 못지않게 유해하다는 사실을 기회있을때 마다 강조한바 있다.내것과 남의것을객관적으로 비교하고 평가할수있는 안목이 있어야 내것에대탄발전적 전승이 가능하다.내것의 가치와 중요성은 평가절상하는데 반해 남의 것은 무조건 평가절하하러는 편협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한 우물안 개구리의 신세를 면하기 어렴다.
한편 과거의 사실을 들먹여생색을 내러 들거나 지난날의과오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강요하면 불필요한 반발만 사게된다.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새로운전기를 마련하려는 까닭은 무엇보다 한국의 국가이익을 증진시키려는 우리의 실질적 필요때문이지 .실속없는 허영심을 충족하기 외해서가 아니다.문화적 주체성은 민족문화에 대한 긍지를 내면적으로슴화시킬때 이루어진다. 만약 이를 밖으로 표출하여 거드름을피우면 남의 자존심을 해쳐 반감을 촉발할뿐 아무 이익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우리는 뱀처럼 냉철하게 따지고 계산해서 묵은 원한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현재와 미래의 실질적 이익을 저배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한다.지금은 바로 냉철한이성으로 감성을 제어해야 할때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일본지식인들에게 왜한국이 당신네가 명명한것 처럼「가깝고도 먼나라」가 되었나를따져보라고 부탁하고 싶다.우리가 원하는것 처럼 당신들도 우리와의 문화적교류의 증폭을통해 상호이해와 이익의 증진을 원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역사적사건에 대한 시간적감각이 다를수 있다는 사실을인정해야한다.
그리고 광복4O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일본에대해 알레르기반응을 보인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좌익비판을 터부시하는 일본지식인들의 친좌익센티멘털리즘 때문이란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한다. <이상회><연세대교수· 신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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