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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저성장 시대 … 도시 패러다임도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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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동차로 대로를 달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20세기 도시의 미덕이었다면 21세기엔 ‘걸으며 주변의 건축물을 즐기고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기 시작했다. 뉴욕은 시민이 더 많이 걸을 수 있도록 도시의 틀을 바꾸고 있고, 파리는 디젤차의 도심 통행제한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도시의 미래 먹거리인 관광산업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대담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대도시 서울의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수복 박사는 1987년 민주화와 95년 지방자치를 변화의 결정적 사건으로 꼽았다. 그는 “민주화를 통해 사람들이 길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지방자치 시대는 이런 변화를 수용했다. 첫 민선인 조순 전 시장 시절 명동·인사동의 ‘차 없는 거리’ 사업이 시작되고 보행자를 위한 녹색교통계를 신설한 건 우연이 아니다”고 했다. 정 박사는 또 “이후 20년간 서울의 토건 사업은 보행 공간을 확대하고 녹지를 넓히고 차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 조성 등이 그런 사례다.

 조민석 대표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20세기 대도시의 성장 담론은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뉴타운식 개발을 할 수 없고, 인구가 늘지 않으며, 성장 위주로 갈 수 없는 대도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보행자 중심 도시’라는 것이다.

 승효상 대표도 ‘일상화된 저성장’이 도시를 바꿔놓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은 지금이 불황이라고 말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 같은 저성장은 우리의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고도성장 시기를 졸업한 선진국은 30년 전 도시계획을 근본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오래된 것을 재생해 도시의 랜드마크로 삼기 시작했다.” 승 대표는 “석유비축기지가 공연장이 되고 취수장이 공원이 됐다”며 “서울역고가와 세운상가도 이제 ‘걷는 도시’를 위해 새 역할을 맡을 때가 된 것”이라고 했다.

강인식·강기헌·장혁진 기자 kang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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