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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청장 어떻게 되나" 경찰 뒤숭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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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허준영 경찰청장이 28일 오전 서울 미금동 경찰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문화일보 제공

허준영 경찰청장은 28일 내내 말을 아꼈다. 전날 청와대의 사퇴 압박에 대해 "사퇴하지 않겠다"며 정면돌파를 시도하던 모습과 달리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허 청장은 이날 출근길 등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오전에 집무실에서 경찰 수뇌부가 모인 회의를 장시간 주재했지만 오후 2시로 예정된 공식 행사는 청장실에서 간략하게 대신했다.

허 청장은 예산안 처리 등 국회에 산적한 '국사(國事)' 처리에 차질이 생길지에 대해서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은 허 청장의 사퇴를 요구한 민주당.민주노동당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허 청장의 한 측근은 "허 청장이 나랏일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점과 경찰 조직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조용히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며 경찰의 분위기를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허 청장이 경찰청장의 임기제를 인정한 만큼 더 이상의 논란이 사그라지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경찰 지휘부는 경찰청장이 소신대로 청장직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적인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지금 경찰에 허 청장은 필요한 인물이고 그의 말대로 새로운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경찰이 책임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조속한 조직 안정을 강조했다.

경찰청은 이날 최광식 경찰청 차장이 주재하는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하고 향후 대책 마련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시위 관리 매뉴얼을 원점에서 다시 만들고 폴리스 라인(경찰 저지선)으로 집회를 관리하는 등의 내용을 논의했다. 실무적인 대책을 만들어'허 청장 퇴진'목소리를 수그러들게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허 청장이 외부 압박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경찰청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향후 업무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경찰은 이기묵 서울경찰청장이 27일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조만간 후임자를 추천해야 한다. 치안정감인 서울청장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고 있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인선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실제로 경찰청은 이달 중순 치안감급 간부 인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청와대와의 이견으로 단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농민 사망 사건의 해법을 찾던 청와대가 허 청장의 인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농민.시민단체들은 이날 경찰청사 앞에서 허 청장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용철.홍덕표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는 30일 규탄대회를 연다. 새사회연대 등 인권단체는 논평을 통해 "허 청장의 사퇴 거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김승현.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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