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존중해 국회 처리를” vs “시간 걸려도 제대로 고쳐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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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05면

지난 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개혁안 반대 여론에 부닥쳐 6일 본회의 처리는 불발됐다. 김경빈 기자

-청와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먼저 한 후 국민연금 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김연명=연금 제도 개혁을 떠나 우리 근대 역사에서 이해관계자와 여야 정당이 싸우지 않고 양보하고 타협한 게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본다. 그걸 대통령이 안 된다고 선을 그은 것은 굉장히 큰 역사적 실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연히 합의를 존중해줘야 했다고 본다.
▶윤석명=개혁 논의에 참여한 인사를 찬찬히 따져보면 공무원·사학연금 당사자가 대부분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진정한 대타협기구로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타협 내용이 국민정서와 괴리가 있었다. 또 하나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의 주(主)는 공무원연금이다. 국민연금을 끼워 넣으면서 본말이 전도됐다. 청와대 문제 제기는 타당한 측면이 많다.

[연금정치 시대] 공무원연금 개혁 불발, 전문가 해법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강도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김=지금 연금 받고 계신 분은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는 분들이다. 어느 정도 삭감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관점의 차이가 있다. 윤 박사나 재정을 중시하는 분들은 내는 돈과 받는 돈의 균형(수지 균형)을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그게 쓸데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연금의 우선적 가치는 노후소득보장이다. 특히 공무원연금은 일반 연금하고 다른 기능이 있다고 본다.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다. 은퇴 후 연금으로 품위 있게 살면 검은 유혹에 안 빠질 수 있다. 국민연금처럼 깎으면 ‘관피아’가 더 많아진다. 어느 정도 세금 부담은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 다만 부패를 저지르면 엄히 처벌하는 룰을 만들면 된다.
▶윤=우리나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심하다. 1960년 공무원연금 도입 당시 평균수명은 52세였다. 지금은 30년 넘게 수명이 늘었다. 연금 받는 기간도 그만큼 길어진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 변화된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가장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게 공무원연금 제도다. 공무원연금에 들어가는 미적립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 총 524조원이다. 이번 개혁안도 수지 균형이 아니기 때문에 미적립부채는 더 늘어날 것이다.

세대 간 도적질인가, 연대인가
-개혁 목표의 핵심 중 하나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제고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통합으로 가야 맞는 거 아닌가.
▶김=공무원을 보자. 영리 활동을 못하게 돼 있다. 임금협상권도 없다. 퇴직금도 민간의 40% 수준이다. 그런 부분에 보상이 있어야 하고 정직하게 공직생활을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연금이 절대적 역할을 한다. 단순히 세금 더 들어가는 문제로 보면 안 된다. 국민연금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정부 주장처럼 ‘다 국민연금으로 바꿔라’고 할 수 없다. 국민연금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통합은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닌 거 같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전통 관료제도하에서 100% 세금으로 연금을 줬다. 그러다 1950년대부터 50% 부담으로 낮췄다가 10월부터 국민연금제도로 통합한다. 많은 나라가 그런 길로 간다. 독립 제도로 공무원연금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공무원이 107만 명인데 37만 명이 수급자다. 2035년 이후는 100만 명 이상이 된다. 지금도 이 난리인데 그때 가면 어떻겠나.

-국민연금 이야기가 나왔으니 계속 해보자. 국민연금 수준 진짜 낮은가.
▶윤=‘그렇지 않다’가 내 주장이다. 2007년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이 60%에서 40%로 떨어졌지만 현재 40대 중반은 55% 이상 받는다. 2028년 이후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세대를 40%로 맞춘 것이다. 그 세대는 인생 100세 시대다. 가입 기간이 길면 연금액도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소득대체율이 40.6%다. 독일이 모범 사례인데 소득대체율을 이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한다. 남성 근로자의 평균 가입기간이 35~40년에 이를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이제 연금제도를 이야기할 때 소득대체율로만 따질 게 아니다.
▶김=팩트를 다르게 이야기한다. 국민연금 초기 가입세대의 소득대체율이 높은 건 맞다. 인정한다. 그러면 지금 세대하고 미래세대를 따져보자. 정부 공식 추계자료에 따르면 2060년이 돼도 실질소득대체율은 23%밖에 안 된다고 나와 있다. 그걸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소득대체율은 보험료 납부기간 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의 비율을 말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은 40%다. 평균 300만원을 받던 직장인이 40년간 근무했다면 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즉 1년에 1%씩(1%×40년) 소득대체율이 올라가는 셈이다. 가입기간이 25년이면 소득대체율은 25%로 떨어진다. 이를 실질소득대체율이라고 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표현했다.
▶김=(웃으며) 세게 지르는구먼…. 그게 연금 논쟁의 본질이다. 세대 간 부담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복지부는 우리가 많이 받고 그 부담을 후세대의 보험료를 올려 충당하니까 도둑질이라는 거다. 그게 안 맞는 이유가 10개쯤 된다.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 나를 예로 들면 부모님은 농업사회에서 태어나 산업사회에서 은퇴했다. 농업사회 노후는 가족이 챙긴다. 노후준비란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산업사회에서 나고 자란 우리 같은 낀 세대는 부모와 자식을 부양해야 한다. 자식 세대는 내가 연금을 받으니 챙기지 않을 것이다. 왜 우리가 독박을 써야 하나. 자식세대가 일부 부담을 짊어지는 게 맞다. 세대 간 도둑질이 아니라 ‘세대 간 연대’라고 한다. 둘째로 국민연금기금이 470조원인데 우리 세대가 낸 보험료로 최소 170조원의 투자수익을 얻었다. 그만큼 다음 세대 부담을 줄여준 것이다.
▶윤=낀 세대라는 점에 대해선 타당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낀 세대가 부모를 봉양해도 왜 OECD 노인빈곤율이 최고겠느냐. 김 교수 같은 분들이야 잘 부양하겠지만 대다수 사람은 자기 먹고살기도 힘들다. 730만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중 노후준비 제대로 못한 사람이 60%는 된다. 그럼에도 이 세대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라는 점이 문제다. 고성장시대가 끝나고 저성장과 저출산이 고착화된다. 부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지 않는 이상 후세대 다수는 혼자 먹고살기 어려운 세대가 될 것이다. 그 세대가 감내할 정도의 제도를 물려주자는 거다.

보험료 인상 얼마나 해야 될까
-국민연금액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러려면 보험료(9%) 인상은 불가피한 거 아닌가. 복지부는 두 배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한다.
▶김=일단 기금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잡으면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려도 보험료는 1%포인트만 올리면 된다. 내 주장이 아니고 정부 자료다. 보험료를 두 배인 18%로 올리면 2083년 기금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40%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기금을 쌓아두는 나라는 없다. 나는 당장 부과 방식으로 연금을 고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다. 당연히 보험료는 올려야 한다. 다만 그 부분에 대해선 사회적 기구에서 논의하자는 것이 이번 합의 내용이다.
▶윤=국민연금은 원래 소득대체율 70%로 도입이 됐다. 그런데 2003년에 50%로 낮추자고 정부안을 내놓았는데 당시 제시한 보험료가 15.88%였다. 이미 이런 법안을 제출한 적이 있음에도 정치권에서 국민 부담을 지울 수 없다고 해서 소득대체율만 40%로 낮춘 것이다. GDP 대비 140%까지 기금이 올라간다고 연금액이 안 나가는 게 아니다. 최대한 고갈 시점을 늦추고 안정적으로 제도를 운영하려면 보험료를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연금은 적립 방식과 부과 방식으로 나뉜다. 적립 방식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기금을 운용해 투자수익 총액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반면 부과 방식은 기금을 쌓아두지 않고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거둬 은퇴자에게 주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 일부를 연금으로 지급하고 일부는 기금으로 운용하는 부분적립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금이 고갈되면 부과 방식으로 전환되는 운명이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료를 올리면 국민연금 기피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윤=사용자와 근로자가 반반(4.5%)씩 보험료를 내는 직장가입자에 비해 순수 자영업자나 특수형태 근로자는 보험료를 100% 부담한다. 이런 사람은 보험료가 오르면 제도에서 빠져나갈 확률이 크다. 결국 국민연금 강화한다고 시작한 게 결과적으로 약화로 갈 수 있다.
▶김=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과세 체제나 사회 시스템이 엉망이 아니다. 소득이 있으면 잡히게 돼 있다. 과장된 이야기다. 합의안엔 소득대체율 인상 말고도 공무원연금을 개혁 절감분 20%를 취약계층 보험료 지원사업에 쓰고 크레디트 제도 확대 등 국민연금 강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좌초된 연금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나.
▶김=이번 사태가 국민에게 공적연금 제도의 기능과 쟁점이 뭔지 이해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결코 나쁜 경험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선진국도 겪었다. 국민연금 수준이 워낙 낮아 선진국은 고사하고 노인 대량 빈곤국을 못 벗어난다. 적당한 수준으로 어떻게 갈 거고 세대 간 분담을 공정하게 할 거냐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
▶윤=공무원연금 개혁하라는데 국민연금을 갖다 붙였다. 공론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잘못된 개혁을 물리기 위해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든다. 조금 늦게, 제대로 가는 것도 나쁘다고 볼 순 없다.



김연명(54) 중앙대 사회정책 박사. 연금과 건강보험전문가로 건강보험통합추진기획단·국민연금운영개선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윤석명(54) 미국 텍사스A&M대 경제학 박사. 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을 지냈으며 고려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정리=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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