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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마리한화 vs 백수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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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31면

동계훈련을 마친 뒤 한화 외야수 이용규는 “이렇게 훈련하고도 지면 화가 날 것 같다”고 했다. 땀의 대가는 금세 나타났다. 안경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지난해까지는 외야수들이 공을 주으러 다녔는데 올해는 잡으려고 쫓아간다”고 했다. 겨우내 가장 많은 땀을 흘린 한화이글스는 올 프로야구 최대 히트상품이 됐다.

한화는 32경기에서 17승을 거두는 동안 역전승만 열 차례 일궜다. 중독성 있는 승부를 펼친다는 의미로 ‘마리한화’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 7년 성적(순위)을 빗대 ‘비밀번호 5886899’라고 놀림받던 구단은 한국시리즈 같은 명승부를 연일 연출한대서 ‘한화시리즈’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이 됐다. 모두 ‘야신’ ‘우승 청부업자’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생긴 변화다. 그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했다.

마리한화로 야구장이 들썩이는 올 봄, 자본주의 경기장인 증시에선 가짜 백수오가 판을 흔들었다. 여성 갱년기 증상 완화에 특효라고 알려진 백수오 제품에 가짜 원료가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소비자들은 식겁하고 있다.

백수오 파문이 충격인 이유는 기업가가 욕망의 실현을 위해 땀과 노력 대신 비겁한 지름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엽우피소와 백수오 원료 간에 가격 차이가 없어 가짜를 쓸 이유가 없다”는 내추럴엔도텍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가격 차이는 최대 3배나 났다. “1년근 백수오를 쓰기 때문에 원료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국내 연간 백수오 생산량보다 백수오 제품에 들어간 원료의 양이 더 많다고 신고됐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기업가의 탐욕에 증시의 탐욕이 더해지면서 투자자 피해는 커졌다. 지난해 초부터 최근 가짜 백수오 파문이 터지기 직전까지 증권사들이 발표한 내츄럴엔도텍 분석 보고서는 모두 44건. 하나같이 “세계를 향한 위대한 한걸음” “무궁무진한 성장성”을 언급하며 투자를 부채질했다. 내추럴엔도텍의 시가총액은 잘못된 분석 보고서와 가짜 백수오를 앞세워 증시 데뷔 1년 반만에 1조7633억원에 이르렀다. 백수오 외에 별 히트상품이 없고 보유자산도 적은 회사였지만 어느 증권사도 투자에 속도조절을 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증권사는 가짜 파문 이후에도 ‘목표주가 10만원’을 주장했다.

김성근 감독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별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절벽에 선 남자’. 그는 평소 선수들에게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안될 일이 없다. 땀을 흘리는 동안 한계치를 뛰어넘는 능력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노력을 통한 ‘욕망의 건강한 실현’과 ‘허황된 탐욕 추구’라는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이 땅의 기업인들이 새겨 들을 말이다. 경영의 절벽 위에서 땀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계치를 뛰어넘을 것인가, 탐욕이라는 밀랍날개를 붙이고 태양을 향해 파멸의 날갯짓을 할 것인가. 2015년 봄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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