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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 <7> 새로운 모험의 시작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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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수연

“숲으로 돌아갔다!”

수리가 암호를 외치자 수리 앞으로 빛의 길이 열렸다. 수리는 홀린 듯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몸뚱이가 하나의 비행선이 된 기분이었다.

“야호!”

수리는 놀이기구라도 탄 듯 신이 났다.

“꺄악~”

수리를 따라 빛의 길에 들어선 사비와 골리 선생님은 상황이 달랐다. 사비는 비명을 질러댔다. 골리 선생님은 아예 기절 상태였다. 기다랗고 가는 모가지가 앞으로 푹 고꾸라져 있었다. 마루는 마루답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수리와 친구들, 골리 선생님은 꼬불꼬불 휘어져 있는 빛의 길을 빛의 속도로 빠르게 통과했다. 그러다 어디론가 뚝 떨어졌다. 칠흑 같은 어둠 사이로 신선한 흙 냄새가 났다. 주변을 더듬어보니 사방이 축축했다. 흙 천지였다.

“사비야, 마루야, 샘? 살아있지? 살아있죠?”

수리는 바쁘게 친구들과 선생님을 찾았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끙끙 신음소리가 들렸다.

“안… 타… 깝게도 살아있다. 수~리.”

골리 선생님이었다. 수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짧게 새어나왔다.

노란 집 문에 적힌 메시지

그때, 갑자기 어두웠던 하늘이 번쩍하더니 주변이 엄청나게 밝아졌다. 천만 개의 형광등을 동시에 밝힌 것처럼 세상은 눈부시게 하얘졌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회오리 은하였다. 끙끙거리며 주저앉아 있던 아이들과 골리 선생님은 벌떡 일어나 회오리 은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게 현실이야 비현실이야?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은 처음 봐.”

골리 선생님은 넋이 나가있었다.

“웜홀을 통과한 거야?”

마루는 줄줄 흘러내린 콧물을 한 손에 억지로 담고 있었다. 사비가 고개를 돌렸다.

“웜홀을 통과하면서 감기 걸렸나 봐. 하하.”

수리가 고함을 질렀다.

“저것 봐.”

모두 수리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어렴풋이 집의 형체가 보였다.

“마루야. 어서 무기 꺼내.”

마루는 콧물을 한 손에 담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눈짓으로 끔뻑했다.

“수리, 지금 전쟁 나왔냐?”

사비는 자신이 메고 있는 배낭을 열어 보여주었다.

“손 망치, 손도끼, 손칼, 뗀석기…. 쓸만한 무기가 별로 없네.”

“가만가만. 우리 구석기시대로 온 거야? 뗀석기라니? 석기시대라면 좀 이상한데?”

골리 선생님은 혀를 끌끌 찼다.

“우리가 도착할 곳이 어떤 시대인지 모르니까 위험에 대비해서 챙겨온 것뿐이에요.”

수리는 오히려 신이 나 있었다.

“회오리 은하가 코앞에 보이는 지구의 또 다른 시대일까? 아니면 이름 모를 또 다른 행성일까? 그나저나 거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사비는 혼자 중얼거렸다.

“자, 진격 앞으로!”

수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방패연이라도 날리고 싶은 날씨였다. 바람이 살랑살랑거렸다. 모두 저 언덕 너머에 아늑한 집과 따스한 수프와 따듯한 목욕물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언덕 끝까지 올라온 순간 모두 충격 받은 표정이 됐다.

“이게 뭐지?”

자연스레 흘러나온 질문에 마루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집은 맞는데, 집, 집이 맞는데… 문, 문이 맞는데….”

노란 집은 우주선처럼 생긴 비행선이었고, 노란 문은 비행선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이거에 대해 아는 사람, 설명 좀 부탁해.”

골리 선생님은 수리를 쳐다보았다. 수리가 비행선 가까이 다가갔다. 노란 문의 입구에서 노란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리는 겁도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수리야. 조심해.”

사비의 당부를 뒤로 하고 수리는 관찰을 시작했다.

“여기 글자가 있어. 언젠가 누가 왔던 것 같아.”

“이곳에 누가 왔었다고?”

사비는 깜짝 놀랐다.

“아니면 원주민이거나. 사비야, 그것 좀 줘봐.”

사비는 수리에게 커다란 확대경을 건넸다. 수리는 확대경으로 글자들을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무슨 이름 같아…. 우리가 알던 글자가 아니야. 어, 여기 날짜가 있어. 이건 알겠어, 아라비아 숫자야.”

“그렇다면 그리 오래된 건 아니잖아?”

확대경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수리를 보며 사비는 밝게 웃었다.

“1967. 05 06 45 04 05 04 Nui here.”

수리가 힘들게 띄엄띄엄 읽어 내려갔다.

“어, 누이, 아니야? 누이? 누이지? 맞지?”

사비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름이야. 이름. 이름이라고!”

수리는 팔짝팔짝 뛰었다.

“도대체 왜 저래? 이름이 뭐 어때서? 나도 이름 있다고. 마루!”

“내 이름이라고. 내 이름!”

수리는 이빨을 다 드러내고 웃었다.

“뭐어? 수리? 네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마루는 한 손에 담고 있던 콧물을 그만 뚝 떨어트리고 말았다.

“모든 새들과 모든 물고기와 모든 바람이 서로 사랑을 했네, 그곳에서 태양이 태어나고 달이 태어나고 별이 태어났네, 그리고 그들이 태어났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태어났네, 누구보다 키가 컸네…. 기억나지? 강당에서 노래했잖아?”

수리는 역사적인 발견을 한 고고학자처럼 굴었다.

“이 노래에 네 이름이 있다고? 드디어 돌았구나, 수리.”

마루가 히죽히죽 웃었다.

“모든 새! 모든 새가 바로 내 이름이었어.”

골리 선생님도 깔깔 웃었다.

“네가 어떻게 새야? 네가 새면 나는 사람이다.”

“내 이름은 새에서 기원하고 있어. 수리….”

“수리…. 앗, 독, 수리? 독수리…. 참독수리,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흰머리수리, 흰죽지수리, 필리핀 독수리….”

사비가 줄줄 읊었다.

“여기 보면 새의 그림이 있어. 이건 나를 가리키는 거야. 이 문자를 여기에 기록한 사람은 내가 올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수리는 모처럼 으쓱했다. 골리 선생님도 거들었다.

“이건 내 전문이야. 간달프가 타고 다녔던 하스트독수리, 그리고 하늘의 제왕 하피독수리가 있지. 이제야 연관성을 알았지만, 수리가 날개를 뜻하기도 하거든.”

수리가 자못 진지해졌다.

“오래전 레무리아 대륙 사람들에겐 사람 새 전설이 있었어요. 사람 새가 그들을 구원해줄 왕이라는 거죠. 그 사람 새가 어떤 별에서 내려올 거라고 했다고 해요.”

“그런데 네 이름은 수리지? 독, 수리는 아니잖아?”

골리 선생님은 미심쩍은 눈치였다.

“그 점은 곧 밝혀질 거예요. 전 믿어요. 제 운명을요.”

“저, 저 똥배짱. 어, 갑자기 집이 움직여!”

마루는 덜컥 겁이 났다.

“집이 아니라 비행선이라니까.”

수리가 크게 소리질렀다.

하여튼 집인지 비행선인지 엔진 소리가 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윙윙 탁탁 윙윙 탁탁 소리였다. 노란 문에서 나오는 노란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빛이 회오리를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아이들을 휘감았다.

“앗!”

아이들은 비행선 안으로 쏙 사라졌다.

노란빛에 휩싸여 비행선에 탑승하다

아이들은 비행선이 하늘을 날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창밖으로 회오리 은하가 보였기 때문이다. 비행선 내부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나는 대저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중앙은 커다란 원형 로비였고 각 층은 회오리 계단이 빙글빙글 돌며 7층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수리는 로비 중앙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 속에는 투명 유리문이 있었다. 그 문 안 쪽에 문이 있었다. 그 문 안에 문, 문, 또 문이 있었다. 그리고 멀리 마지막 문에서 희미한 푸르스름한 빛줄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수리는 그 문을 모두 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솟아났다.

“그래. 가보자. 까짓 것. 사비야. 무기!”

그 순간 비행선이 기우뚱하더니 무언가 물컹한 것을 스쳤다. 비행선은 좌우로 꿀렁꿀렁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 위에 떠있는 것 같아.”

사비가 외쳤다.

“말도 안 돼, 우리는 비행선 내부로 빨려들어갔어.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고. 회오리 은하를 보았잖아?”

마루도 외쳤다.

모두 창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골리 선생님은 그저 보고 있기만 했다.

“도대체 폴리페서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걸까? 하늘을 날면 어떻고 물 위로 떠다니면 어떠냐? 폴리페서도 없는데, 상관없지.”

“바다야. 바다라고.”

사비가 호들갑을 떨자 골리 선생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수리야,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바다라니? 그럼 지금 우리가 타고있는 게 배라는 얘기야?”

그때 또 기우뚱했다. 아이들은 우루루 한 쪽으로 쏠리며 우당탕 넘어졌다.

“뭐야? 왜 이런 거야?”

수리가 어기적 기어서 다시 창 쪽으로 갔다. 수리는 놀라움으로 눈을 크게 떴다.

“바다가 아니야. 대륙도 아니야.”

모두의 시선이 수리를 향해 있었다.

“물컹한 대륙이라고.”

비행선은 다시 엄청난 파도에 휩쓸리는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획 돌았다. 물컹한 대륙은 오랫동안 바다의 역사를 담고 살아왔기 때문에 파도 하나하나의 무게만 해도 몇천 톤은 되었다. 계속 파도에 부딪히다간 곧 비행선이 박살 날지도 몰랐다.

“당장 살고 보자. 수리야. 어떻게 좀 해봐. 하늘의 제왕 독수리라면서?”

그 순간 비행선은 뚜렷하게 옆으로 획 기울었다. 엄청난 탄력을 가진 무거운 젤리 위에 떠있는 것 같았다. 물컹한 대륙은 허우적거리는 비행선을 먹으려 하고 있는 듯했다.

“안 되겠다. 뗏목을 만들자.”

수리가 제안했다.

“뭐? 뗏목? 거인들 만나는 게 왜 이렇게 고달파?”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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