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인가요 사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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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당나라때 도오와 점원이라는 두 스님이 있었다. 어느날 점원이 스승 도오와 함께 마을상가에 가서 독경을 하게 되었다. 그때 제자인 점원이 불전에 있는 관(이속에는 죽은 사람이 들어있는것이 확실하다)을 두들기며 스승에게 물었다. 『생인가요 사인가요』그러자 스승인도오화상이『죽었다고도 할수없고 살았다고도 할수없다』고 말했다.
도오의 정신세계에서는 죽었다고도 할수 없고, 살았다고도 할수없는, 즉 생·사를 말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점원은 거기에 무슨 말 못할 비밀이 있어서 일부러 감추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왜 딱부러지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말하지 않으면 스님을 때려야 하겠읍니다. 어떻게 하겠읍니까?』 하고 다그치는 것이였다. 그러나 스승은 『말할수 없다. 절대로 말할수 없다. 때리고 안때리고는 너의 마음이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점원은 도오를 때렸다.
여기서 명백히 죽은 시체를 넣어둔 관을 보고도 어째서 말할수 없다고 하였는가?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동양사상의 사고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말을하게 되면 진짜가 감추어져 버린다. 숨겨놓고 말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말할수 없으니까 말하지 않는 것이다.
즉 말하게 되면 거기에 무엇인가 근거가 있는것이 된다. 만약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도 역시 사고의 연금술사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진정 말할수 없는 순수한 자각의 밑바탕, 그것을 불이, 즉 둘이 아닌것으로 보는 사고다.
천당과 지옥, 정신과 물질, 생과 사, 유와 무, 다와 일, 보편과 특수 등등 많은 철학적 개념은 언제나 이원론적 사고가 기초되어야한다.
이원론은 결국 변증법적 사고를 지상으로 하여 모순·대립을 통한 창조를 그려낸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기도 한다.그리고 그러한것들은 어느 정도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는 한에서는 사고의 연금술은 끝없이 진행되고 우리는 고통을 면할수 없다. 진정으로 천당과 지옥, 죽음과 삶, 유와 무를 아는것은 이것을 둘로 보지 않는 불이 정신에 있다.
거기에 영원한 평화, 진정한 박애, 자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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