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송덕비 등 이름 앞세우는 시대흐름은 허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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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도시생활을 하면 늘 그리운 것이 자연이지만 여름철같이 숨막힐 때는 더욱 그러하다. 직장생활을 하는 한 선배는 일요일만큼은 새벽등반을 하며 쌓인 피곤을 푸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새벽 산길이 좋아서 나도 곧잘 따라나서 곤 한다.
가랑비를 맞으며 숲길을 걸을 때라든가 맑은 물이 바위 사이사이를 휘돌며 순수의 생명력으로 흐르는 골짜기를 내려다 볼 땐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다 싶다. 오묘한 자연 앞에서 「나」는 없어지고 그지없이 충만 된다.
산 속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투명한 초록 숲 속에서 긴 모가지를 빼어들고 노랗게 타오르는 산나리, 미세한 톱날 같은 잎들을 펼치고 숨은 듯 피어있는 패랭이꽃 그 작은 꽃을 선배는 무척이나 좋아해 패랭이꽃만 보면 걸음을 멈추곤 했다. 패랭이꽃을 사랑하는 것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그 생명의 겸허함 때문이 아닐까.
그런 풀꽃들을 바라보면 영웅주의자 -역사에의 의지이기도 하지만-에서부터 자기 이름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이 참으로 어리게 느껴진다. 불심으로 절에 바치는 탕에나 종에도 시주의 이름을 어김없이 새기고 어떤 이는 산에 와서 까지 자기 이름을 영구 보존토록 바위에 흰 페인트로 써놓는다.
하긴 그 정도는 돈과 권력으로 자기 송덕비를 세우는 몰염치한 짓에 비하면 애교스럽기 까지 하다. 투서사건으로 서민들을 경악케 한 두 의원님들의 송덕비 경쟁기사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 그들은 고향에다 자기 송덕비 뿐 아니라 선친·당숙·장인의 송덕비와 종씨 세거비까지 세웠다.
이야기가 좀 빗나가는 것 같지만 자기 이름을 남기기 위한 이러한 어리석음은 인격으로써가 아니라 출신성분으로써 사람을 보는 우리 사회의 허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선조 들은 가문과 족보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왔고 현대인들은 사람을 만나면 학벌부터 따진다.
강아지나 돼지에도 있는 족보를 자꾸 따지다 보니 지금도 무슨 종친회니 동창회 같은 것이 의미 없이 많다.
씨족사회에선 끼리끼리는 나누어 먹고 인정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폐쇄를 가져오고 공정성을 잃기 쉽다. 사학자도 이완용이 내 가문 사람이면 매국노 라 기록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잡지사 기자로 있을 때 「명가의 내실」이란 난을 맡았는데 의학계의 대두인 김두중 박사를 인터뷰한 일이 생각난다. 한 시대에 일가를 이룬 분들을 통해 한국 정신의 맥을 찾으려는 것이 기획의도였다. 제목부터 「뿌리 찾기」여서 무슨 김씨인지 물으면서 집안 얘기를 들으려 했는데 그분은 단호히 『나 그런 것 몰라』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무엇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진지하게 살아갈 때 이름은 저절로 떠오른다. 또 고통스럽게 싸운 만큼의 댓가를 받지 못하고 풀잎처럼 스러진다 하더라도 그 인생이 헛될 것인가. 프랑스 사람들은 무슨 말끝에든 『셀라비-이것이 인생이다』를 덧붙인다는데 꺾인 꽃도 꽃이고 개울가에 흐트러진 이름 없는 풀꽃의 삶도 장미만큼 귀하다.
어느 사학자가 목은 이색에 관해 쓴 글을 본적이 있는데 『정치의 성공·실패는 그에게는 여담이 된다』는 결구가 잊혀지지 않는다. 『목은시고』에 실려있는 시만도 4천3백여 수에 달하고 정치가로서 보다 문인·학자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어서 그러하겠지만 현세의 성공·실패 따위는 여담이 되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멋진 인생이 아닌가 싶다.
황진이의 유언이 문득 생각난다.
『내가 죽거들랑...그 시체를 동문밖에 버려 개미와 까마귀의 밥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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