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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만 명성코더…비·바람에 날로 황폐|지방에선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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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누가 하든지 해야 할 사업아닙니까. 명성이 빚보다 자산이 많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다시 살아나는게 정상 아닙니까. 우리는 희망을 갖고 있읍니다』
지난해 5월 양평현장의 토목부장으로 왔다가 석달만에 회사가 망하는 비운을 겪고 다시 1년째 회사가 살아나기를 기다리며 공사현장을 지키고 있는 명성콘더 양평건설현장 사무소장 강명식씨(42)의 이야기다.

<골조만 유령처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중미산의 깊은 계곡 콘더건설 현장은 지난해 8월17일 명성사건이 발표 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멎어있다.
맨안쪽 지하2층·지상6층 5개 동의 콘더(4백85실)는 A·B 2개동만 하얀 페인트 칠을 한외장이 끝난 모습으로, 나머지 l개동은 지상6층까지, 2개동은 지상3층까지 골조만을 올린 모습으로 유령처럼 서있다.
개울을 건너 짓다만 99칸 한옥이 역시 기둥과 서까래만 올린채 비닐휘장을 둘러치고 있다.
합판·철근·시멘트구조물·모래·자갈이 곳곳에 쌓여있고 1천3백여명 노무자들이 법석이던 10여개동의 막사는 텅 빈채 문이 굳게 잠겼다.
콘더 시공을 맡았던 효성건설에서 파견돼 현장을 지키는 황석준씨(48)도 벌써 9개월째 산중 유배신세.
명성직원 9명, 효성직원 4명이 저마다 공사 재개만을 기다리며 3억여원어치 자재가 쌓인 현장을 지킨다.
『콘더를 분양 받은 회원들도 심심찮게 찾아옵니다. 어떻게 돼있나, 혹시 공사가 재개되지나 않나하는 기대로 근처를 지나는 길에, 혹은 공휴일 같은때 피크닉 삼아 찾아오곤 해요. 정상적으로 진행이 됐다면 지금쯤 이 일대가 피서객들로 온통 야단일텐데‥. 이미 적지 않은 자재들이 유실되거나 못쓰게 되었지만 이대로 더 가면 모두가 썩어날 판이예요』

<관리 등 싸고 이견>
지난해 한여름을 더욱 뜨겁게 했던 명성사건의 회오리가 지나간지 1년.
명성레저왕국, 그 궁의 결정판이 될 예정이었던 5백60만평의 양평레저타운은 그 시작에서 난파됐으나 신기루의 자취를 골짜기마다 남기고있다.
명성이 무너질 당시 공사를 진행중이던 사업현장은 ▲설악산(콘더1천5백40실, 호텔1백29실, 18홀골프장, 어린이놀이터, 민속관) ▲양평(콘더4백85실, 야외조각공원, 풀, 민속촌등) ▲지리산(콘더57실, 호텔57실) ▲백암(콘더2백40실) ▲용인(콘더2백50실) 등 모두 5군데.
명성은 그중 설악산의 제1콘더 7백68실과 골프장, 그리고 지리산 콘더를 완공했을뿐 나머지는 공정 60∼90%수준에서 일시에 중단됐다.
지난해 7월5일 국세청의 정밀 세무조사가 시작돼 8윌17일 전모발표와 함께 업주 김철광씨 부부의 구속으로 사건이 터지면서 공사는 중단됐고 공사의 주체이던 금강개발· 명성관광·명성컨트리·태평양레저타운·주식회사 명성 등 명성의 5계 주력기업은 10월5일부터 재산보전 관리가 개시됐다.
올2월28일부터 정식 법정관리로 넘어갔으나 관계부처의 이견에다 명성최대채권자(1천1백47억원)인 상업은행측의 소극적 자세로 현상유지 이상의 적극적인 관리는 못한채 다시 여름을 맞았다.
오직 한군데 설악콘더안의 위락시설(부지 1만6천평에 어린이놀이터·수영장 등 18종시설) 을 지난 4월 10%쯤 남은 공사를 재개, 한달만에 마무리지어 5월5일 개장한 것이 그동안의 진척.
『죄가 있다면 업주에게 있지 매력있는 사업에 끌린 직원이나 선의의 콘더 취득자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콘더회원권을 산 사람이 1만5천여명이나 되는데 콘더는 7백68실밖에 쓸수 없으니 소동이 날 수 밖에요』

<회원들 몰려 소동>
7월 하순부터의 황금시즌에 콘더 객실을 예약하기 위해 13일부터 매일아침 수백명씩 회원들이 몰려 소동을 빚고있는 서울 운니동 삼환빌딩내 명성 예약사무실에서 한 명성직원은 밀려 닥치는 회원들에게 하소연을 하다말고 볼멘소리로 당국의「무정견」 을 나무랐다.
사건직후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명성측은 그동안 대부분 뒷마무리밖에 남지 않은 공사를 올 여름전에 끝내 휴가철 회원들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뛰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설악제2콘더의 경우 지난해 3백실을 부분 준공해 손님을 받았으나 사건후 건축법 위반으로 고발당한채 모두 문을 잠가 놓고있다. 인근의 명성골프장도 공사는 끝났으나 영업허가를 받지 못해 놀리고 있다.
지리산콘더는 하던 영업조차 중단 당했다. 사건직전 지난해 7월17일 준공, 그달 27일부터 영업을 개시했으나 지난 5월 구례군으로부터 오수정화시설 미비로 적발당해 영업정지상태. 오수처리 시설은 57실의 콘더와 57실의 호텔을 지으면서 콘더분만 시설을 한 것. 윗동네 여관촌 업자들의 진정으로 구례군은 영업정지를 내렸으나 정작 그 뒷처리는『군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 군 당국의 말.
백암과 용인의 콘더 역시 공정 80∼90%서 버려진채 황폐해 가고있다.

<동파 등 피해 막심>
『지난해 11월 돌풍으로 짓다 중단된 민속촌의 기와집·초가 13채가 모두 지붕이 날아가고 그중 6채는 기둥까지 쓰러졌지만 손을 못쓰고 있읍니다. 겨울엔 제2콘더와 역시 공사 중단된 호텔킹덤의 난방용 파이프가 얼어터져 애를 먹었고 제2콘더는 사람이 쓰지 않으니까 내장재 등이 습기나 바닷바람 엉망으로 부식·파손되고 있어요. 지난 겨울동안 동파 등으로 본 피해만해도 6천만원이 넘습니다. 공사재개가 늦어질수록 추가부담 공사비가 엄청나게 늘어날 겁니다』
설악콘더 시설관리과장 정운만씨는 누가 해도 해야할 사업인데 시간만 늦어져 국가적 손실이라고 했다.
설악콘더에서 울산바위까지(4.2km) 케이볼카·동초서콘더까지(8.2km)모노레일·유드호스텔 등 설악산 52만평 레처타운 계획도 계획만으로 남아있다.
『명성때문에 속초시가 얻은 이득은 정말 컸읍니다. 지난해 한참 공사때는 노임만 한달에 8천만원이 풀렸으니까요. 김씨는 잘못했다지만 관광계발이야말로 동해안 주민의 살길이 아닙니까. 지난해 10월에도 하루빨리 명성공사를 재재해 주도록 관계요로에 진정을 했는데 아직 반응이 없군요』

<지역경기 큰 타격>
속초시 번영회장 최재길씨(61)는 『명성 사건후 속초는 경기가 완전히 죽은 상태』라고 했다. 구례군 번영회장 최종대씨(44)도 『88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웃 남원은 금세 활기를 띠고 있으나 구례는 명성 이후 잠자고있다』면서 지리산관광개발에 구례도 한몫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4월까지 마감한 채권신고에서 명성의 부채는 1천6백77억원, 자산은 전국 24개지역 1천2백50만평의 땅등 약2천3백억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완성 공사를 마무리 짓는데 소요되는 자금은 약3백억원이나 공사가 완공되면 콘더 신규회원권 판매·중도금 등 예상수입은 약4백억원.
문제는 명성을 단죄했던 정책 의지앞에 관계기관들이 누가 앞장서 매듭을 풀어나가느냐에 있다. 대부분의 건설현장이 건축법·산림법 등 위반으로 고발당한 상태여서 1차로 이를 풀어 합법화하고 공사를 재계, 운영을 정상화 하는 것이 순서. 어찌됐든 명성의 꿈까지 단죄한다면 국가의 손실이라는 인식이 현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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