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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과학과 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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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건 실제상황입니다.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1996년 8월 6일 CNN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공식 발표문을 긴급 보도했다. 운석 분석 결과 나온 과학 역사상 최대의 발견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우주 개척에 미국의 모든 역량을 총집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9년간 화성 탐사선을 숱하게 띄웠지만 생명체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재선을 앞둔 클린턴 진영과 수조원의 예산을 노린 NASA가 공모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조작은 민망하지만, 그래도 NASA에 비하면 양반이다.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미 MIT의 볼티모어 교수는 75년 37세의 나이로 노벨의학상을 탄 스타 과학자였다. 그는 86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면역체에 관한 논문으로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백인 동료 연구원이 "조작된 논문"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마녀사냥이 시작되고 의회 청문회도 열렸다. 록펠러대 총장에서 해임된 그는 학자로선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였다. 10년 뒤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실험에서 그의 이론이 입증되고서야 다시 살아났다. 백인 동료는 "그가 아시아계 연구원들을 총애하는 데 앙심을 품었다"고 고백했다. 지금 볼티모어는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 총장이다.

광기가 기승을 부리면 과학은 죽는다. 프랑스혁명 막바지인 1794년 5월 8일, '화학의 아버지'인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징세청부인으로 인민을 괴롭혔다는 죄목이었다. 수학자 라그랑주는 "그의 머리를 베는 데는 1분이지만, 그런 두뇌를 만들려면 100년도 더 걸린다"며 애통해했다. 라부아지에 실험실의 조수인 듀폰은 환멸을 느끼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오늘날 세계 최대 화학업체인 듀폰이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기업이 된 사연이 여기에 있다.

일본 도쿄대는 열 차례 이상 허위 논문을 발표한 다이라 교수를 곧바로 해임하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으로 재연실험을 명령했다. 볼티모어와 라부아지에가 남긴 교훈 때문이다. 만의 하나 있을지 모를 비극을 막기 위한 조치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과 잦은 말바꾸기는 실망스럽다. 그래도 재연실험까지 차분히 지켜보면서 옥석을 가리는 게 정석이다. 진짜 '말짱 황'이라면 그때 내쳐도 늦지 않다. 지나친 순수성과 결벽증은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한 발 물러나 냉정해져야 한다. 오늘이 훗날 광기의 시대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