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고통 그린벨트 주민 … 식당·숙박시설 지을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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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함께 푸는 규제 빗장! 달려라, 한국 경제’를 슬로건으로 한 이날 회의에서는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현장 규제 개혁 방안 등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0만㎡ 이하 그린벨트 부지의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주고, 고립된 소규모 그린벨트를 풀기로 한 것은 주민 불편을 해소하고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6일 내놓은 규제개혁 방안은 그린벨트 안의 과도한 규제를 줄여 주민의 소득을 올리고, 자율주행차량과 같은 새로운 성장산업을 뒷받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규제 개선과 지방 규제개혁 방안도 포함됐다.

 이날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는 그린벨트 안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생활 불편을 해소하고 불합리한 재산권 침해를 없애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그린벨트 규제 개선 방안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대주택 개발사업을 위해 그린벨트를 동원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역대 정부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조금씩 그린벨트를 해제하다 보니 저개발 지역과 훼손 지역이 뒤섞여 ‘누더기 벨트’란 지적까지 나왔을 정도다. 윤성원 국토부 도시정책관은 “주민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풀고 훼손된 지역은 다시 녹지로 만들어 보존하되, 해제할 곳은 빨리 해제하자는 세 가지 방향을 정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토 면적의 3.9%(3862㎢)를 차지하는 그린벨트에는 11만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1971년 그린벨트로 처음 지정된 이후 반세기 가까이 실생활의 제약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린벨트 안에서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을 콩나물(300㎡ 이하)·버섯(500㎡)처럼 몇몇 농작물로 제한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국토부는 이 규정을 바꿔 앞으론 500㎡ 이하 면적의 토지에서 품종에 상관없이 농작물 재배를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소규모 특산물 가공시설만 세울 수 있었지만 앞으론 특산물 판매장과 체험시설도 들어설 수 있다. 마을 공동으로 농어촌 체험마을을 추진할 경우 숙박·음식점 등 부대 시설(2000㎡)까지 설치할 수 있다.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도 있다. 그린벨트에 허가 없이 지은 축사나 창고에 대해선 전체 면적의 30%를 공원 녹지로 조성하는 대신 나머지 부지를 창고로 계속 쓸 수 있도록 했다. 주민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그린벨트 녹지를 복원하기 위한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2017년까지만 시행된다. 2018년부터는 1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매긴다. 이성민 국토부 녹색도시과장은 “경기도 하남·남양주 일대에 몰려 있는 불법 창고를 합법화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벨트 내 주유소에 편의점을 못 두도록 한 비합리적인 규제도 없애기로 했다.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넘긴 것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 도심과 가까운 곳은 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난개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지자체에 해제 권한을 줬기 때문에 지방선거 때마다 표를 염두에 두고 과도한 규제 풀기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난개발을 막기 위한 분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환경정의도 기자회견을 열어 “지자체의 지역 개발 욕심에 국토가 난개발될 수 있다”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윤성원 도시정책관은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넘어가지만 해제 가능한 총면적이 2020년까지 233만㎢로 묶이는 만큼 난개발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도심 터미널 부지나 공구상가와 같은 노후 시설을 재개발해 도시첨단물류단지로 육성하는 ‘물류 인프라 규제개혁 방안’도 내놨다. 국민 생활에 파급 효과가 큰 지방 규제 4222건도 정비 대상에 올랐다. 지자체 전체 규제(4만2051건)의 10%다. 이정원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은 “행정자치부와 함께 지자체의 관련 조례 개정을 유도하고 있다. 사업주가 부당한 규제를 받을 위험이 적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선 정부의 규제 개선 노력은 평가하면서도 더 적극적인 개혁을 요청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수도권 규제와 같은 핵심 덩어리 규제부터 손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태경·김민상 기자, 황의영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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