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에게 찍히면 평생 고생" 학위 따려 불합리한 지시도 참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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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작 사건을 가능하게 한 이공계 연구실의 풍토를 짚어본다.

◆ 불합리한 지시도 거부하기 어렵다=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선 지도교수가 '제왕'이다. 지도교수의 눈 밖에 나면 당장 주요 연구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학위논문 심사나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래서 대학원생이나 연구원들은 지도교수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다.

황 교수는 자신의 연구원들 달력은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자랑하곤 했다. 이런 '한국형 성실성' 역시 연구실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물학정보센터(BRIC)에는 "(일요일에도) 대장 교수가 나오라는데 안 나올 사람이 있겠나" "윗분한테 찍히면 바로 잘릴 수밖에 없다" "지도교수와 싸워 실험실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나면 (이 바닥에서는) 어딜 가도 살아남기 힘들다"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이런 수직적 위계질서에 익숙해지면 지도교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합리한 지시를 하더라도 섣불리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팀의 김선종 연구원도 사진 조작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 학위와 논문 위해 모든 걸 참는다=이공계에서는 현장에서 쌓은 오랜 경험보다는 학위가 우선이다. 학사 출신으로 정부 출연연구소에서 비정규직으로 10년 넘게 일했다는 한 연구원은 "연구계획서 제출 때마다 석.박사 후배들보다 인건비가 낮게 책정되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학위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월 20만~50만원의 '용돈'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가 등록금만 내줘도 감지덕지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싼 인력이 대학원생"이라고 할 정도다. 외국인 근로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학원생들이 하루빨리 학위를 마치고 교수 자리를 잡거나, 사이언스.네이처.셀 등 유명 과학잡지에 단독으로 또는 공저자로 논문을 싣는 데 열을 올리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도교수가 어떤 지시를 하더라도 꾹 참고 견딘다는 것이다.

교수들도 열악한 연구 환경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서울 소재 사립대인 S대의 한 교수는 "대부분의 교수는 연구비 자체가 충분하지 못하고 실험설비를 갖추는 데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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