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쟁이 신부님' 의 특별한 성탄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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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성당 건립비로 11억 여원을 기부한 광주 동구 학운동 성당 이성규 주임신부가 마리아상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광주=양광삼 기자

"철부지 소년 때부터 간절히 소망했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정성을 모은 덕에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광주시 동구 학운동 천주교회 이성규(59) 주임신부가 성탄절인 25일 복음(福音)을 선물했다.

그가 최근 "고향 마을에 성당을 짓는 데 써 달라"며 천주교 광주대교구에 현금 10억원과 1억5000만원 상당의 땅을 기증한 사실이 교회 안팎에 알려진 것이다.

현금 10억원은 검소하기로 이름난 그가 40여년 동안 절약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것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팔아 마련했다. 1999년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 1억여원을 보탰다.

1980년 강원도 지역 군 부대에서 군종 신부로 일할 때 미사 도중 신군부가 광주에서 저지른 만행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40일간 감금됐었던 대가(?)로 받은 돈이다.

이 신부가 현금과 함께 내놓은 전남 나주시 영산포의 땅 250여평은 그가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짓기 위해 월급 등을 모아 1999년에 구입한 것이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이 신부의 성금으로 그의 고향인 광주시 광산구 수완동에 성당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신부의 어린 시절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을 만큼 외진 곳이었던 수완동에서는 현재 한국토지공사가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을 하고 있다.

8남매 중 일곱번째였던 이 신부는 "17살 때 영세를 받고 집에서 4㎞ 떨어진 비아 공소(현 비아동 성당)까지 걸어다니면서 ' 우리 동네에도 성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환갑을 앞둔 나이에 스스로 그 꿈이 이뤄지도록 만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 신부의 거금 기증은 평소 그가 '깍쟁이 신부님'이라고 불릴 만큼 근검한 생활을 해 온 터라서 주변을 더욱 놀라게 했다.

한 신자는 "'추우면 내복을 입으시라'면서 한겨울 미사 때도 성당 난방에 인색하신 분이신데 큰 돈을 선뜻 내놓아 놀랐다"고 말했다.

학운동 천주교회 관계자는 "신부님은 여름철에도 에어컨을 작동하지 않으시고, 물 한 방울도 아끼는 등 절약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이 신부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등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든 걸 아끼고 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자 사회적 의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75년 서품을 받은 이 신부는 "가진 것을 주님 앞에 모두 내놓으니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뿌듯하다"며 "고향에 성전이 완공돼 그 안에 서 보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광주=이해석 기자 <lhsaa@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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