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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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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지나치게 늦었지만 비틀스의 팬이 됐다. 지난 주말,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폴 매카트니(73)의 ‘아웃 데어(OUT THERE)’ 공연을 다녀온 후다. 어렵게 표를 구하긴 했지만 가기 전엔 큰 기대가 없었다. 굳이 꼽자면 비틀스 멤버 중엔 존 레넌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날씨는 우중충했다. 일흔이 넘은, 게다가 지난해엔 건강 문제로 공연을 취소했던 그가 얼마나 좋은 무대를 보여줄지도 의문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에게 반했다. 말 그대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70대였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돌이었다.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모습은 깔끔하고 멋졌고, 2시간40분을 쉬지 않고 노래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어떻게 관리했기에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지?” 함께 간 후배와 감탄했다. 무엇보다 그는 진심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함께 해요” “대박!” 등 꽤 어려운 한국말을 연습해 와 관객들과 소통했고,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귀여운 제스처를 연발했다. ‘오블라디 오블라다(Ob La Di Ob La Da)’ ‘헤이 주드(Hey Jude)’ 등의 명곡을 힘차게 따라 부르며 든 생각은 이거였다. 저렇게 늙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고 보니 최근 비슷한 생각을 한 순간이 또 있다. 만화가 허영만(68) 화백이 예술의전당에서 열고 있는 ‘허영만전(展)-창작의 비밀’을 보러 간 길이다. 40년간 215편의 만화를 그렸다는 허 화백. 전시장 한쪽에 붙어 있는 엽서 크기의 만화일기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노인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만화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나는 절대 노인들 틈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노인들을 그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 영원히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폴 매카트니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게 정말 좋아요. (…) 가끔 ‘아직도 공연하느냐.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아요. 나는 ‘아니, 점점 더 흥미진진해. 더 좋아지고 있어’라고 대답하죠.” 예순, 일흔이 되어서도 사그라들지 않는 열정,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저런 모습으로 늙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어른을 발견하는 건 반갑고도 감사한 일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 역시 언젠가 그들의 나이에 도달하게 될 것이므로.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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