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통령 "과거사 직시 국가라면 보상 생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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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사진 중앙포토DB]

독일의 대통령에겐 실권이 없다. 하지만 독일 국민에게 과거를 직시토록 요구하곤 했던 통일 독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폰 바이체커 이후 ‘국가적 양심의 수호자’로서의 기대감이 있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성해온, 동독의 목사 출신의 요아힘 가우크 현 대통령도 그런 경우다.

그가 이번엔 그리스의 나치 피해 배상 요구에 공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난 주말 쥐트도이체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민족일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 파괴의 상흔을 남긴 이들의 후손이기도 하다”며 “여러 국가 중에서 특히 그리스의 경우엔 부끄럽게도 오랫동안 우리가 아는 게 너무나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곤 “대통령으로서 연방정부의 법적 견해와 다른 진술을 하지 않겠다”면서도 “독일 같은 과거사 직시 국가라면 가능성 있는 보상을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3월 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인들을 상대로 나치가 벌인 범죄에 대해 용서를 해달라고 말한 일이 있다. 하지만 배상 문제에 대해선 에둘러서 부인했다. 그게 독일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 53년 런던부채 협정에 따라 이미 배상했으므로 종결된 사안이란 것이다. 당시 서독은 그리스의 나치 범죄 희생자 유가족들에게도 5740만 유로를 배상했다. 독일 정부는 이를 근거로 최근 그리스 정부가 나치 피해 배상금이 2787억 유로(332조원)이 달한다고 주장했을 때 “어리석은 소리”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독일의 이 같은 입장에 반론이 적지 않다. 당시 서독은 공식 배상을 동서독 통일이 이뤄질 때로 미뤘으나 정작 통일 이후엔 어물쩍 넘어갔기 때문이다. 또 나치가 그리스 은행으로부터 강제 대출 받은 대출금은 과거에 언급도 안 된 사안이다. 시가로 103억 유로나 되는 거액이다. 독일 정가에서 “배상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가우크 대통령이 힘을 보태는 발언을 한 셈이다. 다만 양국간 청년 사업 등 우회적인 방안을 제시해 그리스의 직접 배상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에선 독일 대통령의 그 정도의 발언에도 환호했다. 조 콘스탄토플로 그리스 의회 의장은 “그의 촉구는 그리스의 배상 압박과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3일 보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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