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사사건」을 계기로본「목회자의 윤리」〃한계기록교 일대회개운동벌일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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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의 박조준목사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역시 해온 종교계와 존경을 아끼지 않던 성직예상에 허탈감을 느끼게 했다.
기독교 일각에서는 이번일을 계기로 목회자의 성빈운동과 동양적인 해탈의 자유를 지향하는 좌선령성수련을 통해 선교1백년속에 쌓인 폐단을 씻고 갱신의 미래를 열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 갱신운동을 강력히 주장해온 신학자 주재용박사와 전택부장로의 대담을 통해 안국교회의 밝은 미래를 일기위한(26일상오10시 본사회의실)의견을 들어보았다.
주재용교수=영락교회 박조준목사 사건을 계기로 한국개신교 1백년의 회개와 선교 2세기를 향한 새로로 「미래정립」에서 솔직하게 조명해보는 적극적인 수용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한국기독교가 처절한 회개를 되풀이해야할 최우선의 문제는 교계 비리의 주원인이기도한 교회의 세속화된 물량주의지요.
전택장로=한국교회의 시급한 일대회개운동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회개나 기도운동은 본래 조용하고 은밀한게 그 속성입니다. 근래 드러내놓는 회개운동이나 전시효과 겨냥의 대규모기도집회가 많은데는 아주 못마땅한 생각이 들어요.
주=우선 잘못된 한국교회의물량주의적 가치관을 바로 잡기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성빈운동과 동양적 영성훈련의 전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교회의 물량주의는 교회의 절대부패 요인입니다. 심지어 축복을 물량으로 환산, 사고 파는풍조까지 일고 있어요. 건강·재불등의 축복은 신앙의 결과이지 결코 신앙의 목적이 될수는 없는거지요.
한국교회는 이제 성빈의 모범이었던 성 「프란시그」의 성직자상을 본받는 성빈신학을 새롭게 정립하고 동양 고유의 좌선법등을 통해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와지는 영성수련을 쌓아야합니다.
정=외화내빈의 교회 대형화나 대집회풍조는 교회가 세태에 휩쓸려 세상을 본받은 겁니다.
성서는 『세상을 본받지 말라』 고 했지요.
정말 딱한 일입니다.
주=소유와 부를 추구하는 물량적 가치관과 기독교 교리의핵심인 베푸는 사랑은 결코 공존활수 없어요.
따라서 교회와목회자는 세속의 물질주의서 극복한 「가난」 을 자랑할수 있어야합니다.
전=한국 초기교회 지도자중에는 가난속의 사랑을 실천한예가 많습니다.
교회 부흥회강사로 나간 한 목회자가 헌금사례를 끝내 거절하자 신도들이 두루마기 한벌을 만들어 입혀주었지요. 그는 돌아가는 길에 한민가에 들러 전도를 하다가 집주인의 헐벗은「가난」을 보고, 사례로 받은 새 두루마기를 벗어 주었다지요. 교인들은 두루마기에 고마와 결심을 하고 교회에 나온 그집 주인을 보고다시 한번 감탄했고요.
주=교회의 부는 하느님의 역사에 쓰여질것을 전제로한 헌금에 의해 이루어지는 「특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윤추구가 절대 보장된 자본주의 기업도 기업의 사회윤리성이 강조되는데 활자 교회의 재물이 세상을 위해 전부 쓰여져야 한다는데는 이의가 있을수 없지요.
전=교회의 현금종류가 많고 액수가 크다는 그 자체가 문제일건 없지요. 교회의 부가 진정한 선교를위해 올바르게 쓰여지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주=목사의 생활은 교인들의평균생활수준의 「중」 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게 통설입니다. 물론 목사도 인간인지라 물욕이 없을수 없겠지요.
목회자의 물질은 선교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것일뿐 결코 부의 축적용일순 없읍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세속 물질주의를 초극해야할 윤리적 의무를 갖게 마련이지요.
전=목회자의 봉급은 일정한「표준」 을 정해 지급돼야 합니다.
주=교회재물의 절대액수를 사회를 위해 쓰고 목회자의 물욕을 억제하는 제도적장치가 요망스럽습니다.
가령 교회헌금의 3분의2정도는 사회봉사를 위해 쓰여지는 겸행같은게 정착됐으면 합니다.
전=최근 박목사 사건을 계기로 거론되는 목사의 근로소득세 부과문제의 대 원칙은 절대 찬성이지만 시기가 부적합한 느낌입니다.
목사의 세금 면제나 납부는두가지 다 성직자 대우라는 기본정신과 국민된 기본 의무를 다한다는데서 일리를 갖는양면성이 있어요. 어쨌든 이 문제는 강제적인 국가제도보다는 교회 자체의 자발적인 제도화를 통한 교단총회 단위의 자진징수·납부같은 방법이 바람직할것 같습니다.
주=교회가 헌금의 절대액수를 사회를 위해 쓴다면 기독교적인 세금의 의무는 다하는겁니다.
교회 물량주의릍 억제키 위한 제도화중에는 목사의「최저봉급제」 실시같은것도 적극 고려해 봄직 하군요.
전=기독교인의 모든 윤리는 회개로부터 출발합니다.
주=동감입니다. 잘못을 회개하는것은 은폐하는것보다 훨씬희망적이지요. 원래 회개란 과거의 잘못에대한 뉘우침과 미래를 향한 마음의 개방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갖지요. 박목사 사건과 관련한 교회의 회개는 오늘의 한국교회가자신의 정체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돼야겠읍니다.
전=한국교회의 가장 큰 현실 문제점은 인간회복을 이끄는 제사장적 실천이 전혀 소홀하다는 점입니다.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기독교인은 많아도 사랑을 베푸는 기독교인은 없다는 얘기지요.
주=교회의 사랑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양식이지요.
기독교의 사랑이란 예언자적기능으로 나타나든, 제사장적 기능으로 나타나든 결코 「소유」가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기독교 최고 사랑의 상징인 십자가도 자기를 내주는 것이잖습니까.
전=성직자의 윤리도, 교회의사명도 모두가 사랑의 실천에 귀착되지요.
주=그렇습니다. 소유가 곧 인간존재일 수는 없지요. 따라서 소유추구를 부정하는 기독교적사랑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면 물량적 가치관의 교회에서는 사랑이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수 있지요.
나는 「데레사」 수녀외 여인답지 않은 거친손에서 늘 우리와더불어 함께 있는 성스러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곤합니다.
전=그리스도는 언제나 참다운 인간회복을 위한 메시지를 중시했읍니다.
주=한국교회는 결국 세속조류를 따르다 큰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박목사사건이 세상법을 어겼다는데 이의가 있을수 없으나 성직자와 교회를 아끼는 사랑의 채찍이어야지 세속적인 유명세를 보태는 「비난」이 안되길 바랍니다.
전=공감입니다. 잘못을 감싸달라는 얘기는 아니지만말입니다.<정리=이은윤문화부차장>
대담
전택부장로
주재용교수<한신대·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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