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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의 교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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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년 동안 교단을 떠나 있던 해직교수들이 빠르면 7월1일부터 복직케 된다고 한다. 퇴학된 학생들의 복교 후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조치는 근래 보기드문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학생들과 동료의 곁에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던 해직교수들의 복직을 중심으로 환영해 마지 않는다. 비록 동료해직교수들을 찾아보고 위안의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던 재직교수도 동료의 복직에 대한 기쁨에는 동참하고 있을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교수의 해직과 복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5·16후 한일회담 반대편에 섰던 교수들이 「정치교수」로 몰려 해직된 뒤 얼마 있다 복직되었고, 유신하 재임명조치때 탈락되었던 교수들이 10·26후 복직된 일이 있었다. 그 동안 「정치교수」는 정치적 발언을 삼가게 되었고 강의와 저술에만 전념하고 있다. 한번 해직된 뒤 복직된 교수들의 사회활동이 소극적으로 되었던 것은 부득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랫동안의 교직이탈에서 오는 허망함과 무력감·불신감이 사회참여를 기피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교수는 무관의 지사로서 불편부당 자기의 소신을 펴고 진리를 전수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금력에 굽히지 않는 직업이란 점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고있었다. 그런데 요사이 교수직의 권위가 날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교수가 국회의원으로, 공무원으로, 심지어는 회사간부로 전출하는 것을 보면 교수직에 환멸을 느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된다.
학생들은 교수를 불신하고 교수를 존경하기는 커녕 심지어 「방해세력」 내지는 「적대세력」으로 몰아붙이려 하고 있다. 교수의 무기력을 나무라고 무정견을 비웃으며 학생지도에 임하는 교수들을 경찰의 앞잡이로 취급한다. 당국은 당국대로교수의 학생지도능력을 불신하고 교수들이 학생지도를 적극적으로 펴지 않는다고 나무라고있다.
오늘날의 교수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들의 사기도 저상되어 있으며 교수 나름대로 불만도 많은 것 같다. 부모들도 설득 못하는 대학생들을 이론적으로 설득하기에는 현실분석이 미흡하고, 체력적으로 저지하기에는 완력이 부족하고, 권위로 누르려해도 따르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군사부일체의 유교도덕은 허물어지고 교사는 지식의 전수자인 셀러리맨으로 낙인찍어져 있는 한심한 실정이다.
교수의 사부로서의 권위가 떨어진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교수들의 무사안일태도라고 하겠다. 사회의 불의를 보고도 못본 체, 듣고도 못들은 체 입을 봉하고 있으니 학생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행여나 다칠세라 몸을 사리고 시사원고 청탁에는 거절하느라 땀을 빼는 정신풍토는 교직의 불안정 때문에 오는 것이기도 하다.
전임강사는 2년마다, 조교수는 3년마다, 부교수와 교수는 6년마다 재임명을 받아야하는 임기제 공무원인 국립대학교수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교수의 임기제는 교수들의 연구의욕을 고취하고 학생지도능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임기제 임용은 교직에 대한 불안요소로 작용하여 무사안일에 흐르게 하는 중대한 요인이 되고있다.
미국의 제도를 모방하였다고 하나 미국에서는 부교수이상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미국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제도는 교수를 왜소화·가식화 시키고 기회주의자로 몰아가고 있다. 이를 틈탄 대학교육행정의 관료화는 교수를 소극적인 피동체로 만들었으며 교수의 주인의식의 상실을 가져왔다.
유신헌법 하에서 마련된 이 악법은 하루 빨리 개정되어야만 할 것이오, 교수가 대학의 주인으로서 능동적·적극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수회의 자치가 보다 잘 보장되어야 하겠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은 보장하고 있건만 자주성·전문성이 잘 보장되어 있지 못한 것이 실정이다. 대학교수의 직분은 진리탐구·교육지도·사회봉사에 있건만 학생지도가 본분처럼 되어 버리고 진리탐구나 사회봉사에 소홀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교수는 전문인으로서 국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리민복을 위하여 헌신해야 할 소명이 있다.
그러기에 대학의 조교수·부교수·교수에게는 정당가입의 문호를 개방하고 국회의원의 겸직을 허용하여 고위공무원직 등의 겸직까지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법학교수들이 최고법원의 판사 등을 겸직하고 있으며 경제학 교수들이 경제관료를 겸직하고 있고 또 많은 교수들이 국회의원으로, 정당간부로 활약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능력을 국가발전에 총동원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겠다.
버스나 전철로 출퇴근하는 노교수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화려한 관직에의 유혹을 물리치고 교단을 지킨 보답이 이것뿐인가 반추하게된다. 제자가 지키고 있는 20평짜리 국장실과 책으로 발디딜 틈없는 5평짜리 교수연구실을 비교해 볼 때마다 교직에의 회의를 느끼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처음부터 부귀와 영화와는 담을 쌓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연구하고 교육한 교직자들이 65세 정년 시까지나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수의 신분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오, 주인의식으로 학원을 지킬 수 있도록 권위를 회복시켜 주어야 하겠다. 교수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을 때 국가발전은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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