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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의 신용카드로 긋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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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일러스트=김회룡]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지중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힌다. 아프리카·아시아·유럽의 3개 대륙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대서양과 연결된다. 동쪽은 수에즈 운하를 거쳐 홍해·인도양으로 통한다. 북쪽으로는 흑해와 만난다. 세계 해양 교통의 요지이면서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가 환상을 이루는 곳. 그 지리적 강점과 기후상 장점은 지중해를 ‘풍요의 바다’로 그린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그 풍광에 반해 1986년 그리스의 미코노스섬에서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썼다. 강렬한 지중해 햇빛 같은 청춘의 희망과 질척한 겨울철 우기 같은 젊음의 방황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지중해는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삶의 위안처로 또는 휴식처로, 그 바다는 세계인을 기다렸다.

 이런 지중해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연일 이어진다. 푸른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튀니지·시리아·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청년들에게 이 바다는 비극의 공동묘지다.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몰래 보트를 탔다. 목적지는 바다 건너 스페인·그리스·이탈리아 남부. 보트피플의 항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700여 명이 숨진 지중해 난민선 전복 사고는 절망의 기록이다. 청춘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난민선에 몸을 실었다. “살려달라”는 절규를 내뱉은 아프리카 청년들은 배와 함께 생매장됐다. 배를 집어삼킨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처연했다.

 가슴 아픈 뉴스를 끄집어낸 건 한국의 연령계층별 고용률 통계를 보고 나서다. 불안감이 앞섰다. 아프리카 청년들이 겪는 질곡의 역사가 한국 청년들에게도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한국의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지난해 40% 선 아래인 39.7%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할 수 있는 2012년 수치를 보면 당시 한국의 청년 고용률(40.4%)은 OECD 평균(50.9%)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영국(60.2%), 독일(57.7%), 미국(55.7%)·일본(53.7%)과 비교조차 안 됐다. 한국 청년의 대학 진학률이 높고, 남성의 경우 군대에 간다는 현실을 고려해도 상당히 차이가 났다. 그나마 고용된 청년들 중 3분의 1 이상은 비정규직이었다. 지난 3월 한국의 대졸 실업자 수는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었다.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개편 논의가 파행으로 끝난 건 그래서 더 짙은 좌절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노사정은 각각 다양한 이유를 댔다. 모두 핑계다. 이번 논의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최대 쟁점이 돼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외면했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했다. 노사정은 ‘장그래법’ 운운하며 청년 취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내세우는 척은 했다. 그렇지만 정작 최대 쟁점이 된 건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였다. 취업은 언감생심이거나 해봤자 비정규직인 장그래에게 취업규칙이 무슨 소용이 있나.

 청년들에게 번듯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앞 세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한국에서 중장년 세대의 양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전체 노동자 중 대기업 정규직은 10.3%에 그친다(2014년 고용노동부 통계). 지난해 청년층 신규 취업자의 95%(9만6000명)가 중소업체 임시직으로 들어갔다. 시간당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2만1568원이었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8797원(한국노동연구원 통계)이었다. 내년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의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 통상임금 확대도 불가피하다. 기업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이 말은 향후 5~7년간(정년 55세 기준으로 5년, 53세 퇴직 기준으로 7년) ‘청년 취업 빙하기’가 온다는 의미다. 비용 부담이 커진 기업은 당연히 신규 고용을 줄일 게 뻔하다. 이미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골은 깊어졌다. 청년들의 취업은 비정규직이 당연시되는 상황까지 왔다. 저성장의 먹구름이 덮치는데도 불평등을 심화하는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를 깨지 않겠다는 기성 세대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럴수록 청년들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건 아들딸의 신용카드를 아버지가 그어 쓰겠다는 말과 같다. 그들은 호의호식하겠지만 자식들은 파티가 끝난 뒤 빚잔치할 일이 두려울 뿐이다. 취업은 안 되고, 사회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나라는 빚에 허덕인다면 청년들이 선택할 길은 뻔하다. 암울한 미래뿐인 조국을 떠나는 일이다. 지중해를 건너는 물길은 남쪽에서 북쪽으로만 나 있지 않다. 북쪽(남유럽)의 청년들이 모로코 등의 공사 현장에 취업하기 위해 남쪽(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식당에 한국 청년 종업원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조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대한해협을 건너고, 태평양으로 나서는 청년이 늘 것이다. 물론 이들이 밀입국 보트를 타지는 않겠지만 청년들이 조국을 등진다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는 난민선 신세가 될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를 반드시 재개해 청년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라. 자식의 신용카드를 긋는 순간 부모는 나라를 망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