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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나 홀로 성탄 전야' 신영일의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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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종교를 불문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누구나 뭔가 특별한 일이나 약속이 생길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아니, 이제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마저 느낀다. 일 년에 364일을 홀로 지낸다 하더라도 이날마저 집에서 혼자 귤이나 까먹으며 열 번은 족히 봤을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보고 있노라면 어찌나 목이 컥컥 막히는지.

그런데 이 남자 얘기를 들으니 잠시나마 위로가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슬픈 영화를 봐도 그의 동그란 눈만큼은 언제나 방긋 웃고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스마일맨, 아나운서 신영일.

"저는 3년째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벤트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냅니다. 바로 회사 숙직실요. 올해도 그날 마침 숙직에 딱 걸렸는데 이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요."

남자 아나운서들은 두 달에 세 번 정도 방송국에서 밤을 꼬박 새우는 숙직근무를 선다. 밤부터 새벽까지 라디오 뉴스 4, 5회 정도를 기본으로 해야 하고 또 언제 생길지 모르는 속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아나운서다.

"12월 31일에 숙직이 많이 걸렸는데 바꿔야 할 일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그날은 매년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 생방송을 하잖아요. 그래서 동료에게 덜 미안한 24일로 바꿔달라고 부탁해 왔죠."

남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하는 데 이 남자는 한 손엔 정장 상의, 다른 손엔 단아한 넥타이를 꼭 챙긴다.

"숙직할 때는 속보를 대비해 방송할 옷이 꼭 필요하거든요. 3년 전 여름,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새벽에 급하게 뉴스를 한 적이 있었어요. 옷은 다행히 준비했는데 분장할 도구는커녕 시간도 없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 분장도구를 꺼내 헐레벌떡 제가 직접하고, 후다닥 머리 쓸어 넘겨 일단 방송을 했죠. 나중에 모니터해 보니까 어찌나 긴장했는지 어깨가 옷걸이에 걸린 것처럼 뻣뻣이 올라가 있더라고요."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같은 시간 집에서 한 살배기 아들과 어쩔 수 없이(?) 숙직 서고 있을 아내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면?

"사실 연애시절부터 숙직 때문에 한 번도 크리스마스 이브를 같이 보내 본 적이 없어 이젠 서로 익숙한데요. 혹시나 아내가 서운해할까 봐 오히려 제가 큰소리치죠. '방송 무사히 잘 끝내는 것이 제일 큰 선물인 것 알지?' 하면서요. 못 챙기는 거지, 안 챙기는 건 아니니까 공식적 양해라며 합리화했는데 올해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진지하게 선물을 고민해야죠."

달력의 빨간 날은 방송국 'On Air'의 빨간 불과 같다는 방송쟁이 불변의 법칙. 산타클로스 같은 마음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집에서 TV와 함께 나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선물, 당신이 잠들 때까지 방송 중 이상 무!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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