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건 조금인데 받는게 너무 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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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홀로 사는 박원출 할머니(84.분당구 금곡동)는 지난 여름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젠 움직이기도 버거운데다 음식물 넘기는 것조차 힘겹다. 돌봐줄 가족이나 친지도 없는 형편. 20대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을 사고로 여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온기가 느껴진다. 아직은 따뜻한 이웃이 있기에-.

"주는 건 조금인데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받고 있어요."

비둘기봉사단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조갑순(66).김현정(48)주부는 수요일이면 박 할머니 집을 찾는다. 엊그제 시작한 듯한데 벌써 일년이 넘었다. 조씨가 할머니를 부축해 목욕시키는 동안 김씨는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킨다. 싸한 공기에 뺨이 아려오지만 마음은 상쾌하다. 이불을 털어 햇볕에 널고, 쓸고, 닦고…. 피부에 각질이 일지 않도록 로션을 발라주고 손톱.발톱을 깔끔하게 깎아준다. 할머니가 캔에 담긴 유동식 식사를 제때 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 눈엔 영락 없는 천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천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작은 봉사로 크나큰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감동의 물결이 인다.

'호스피스'는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망 없는 환자가 조금이나마 평온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돕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조 씨는 자원봉사를 시작한지 10년째란다. 처음에는 경산의 보호시설이나 센터에서 아이.노인들을 돌보며 설거지 등 잡일을 도왔다. 분당엔 2년전 맞벌이하는 딸의 부탁으로 외손자 양육을 돕기 위해 왔지만 봉사의 손길은 멈출 수 없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는 이때부터 시작했다. 조씨는 "이렇게 (자원봉사 활동에) 나오면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만은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다"며 "경제적으로 여유만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우련만…"하며 말끝을 흐렸다.

김 씨는 병원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남을 돕는 일을 통해 살리고 싶었다.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본격적인 자원봉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던 남편과 자녀도 이젠 자신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아들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단다. 김 씨의 현재 직업은 베이비시터. 한번은 아이를 보러 간 집에서 애기 엄마와 대화 중 호스피스 봉사한다고 얘기했더니 바로 다음날부터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애기엄마 입장이 이해가 됐지만 맘 한구석에 느껴지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 씨는 "서로가 상대편의 입장을 조금만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사회가 정말 따뜻해질 것"이라고 소망을 풀어놓았다.

두명의 날개없는 '천사'는 "병으로 인해 마음까지 닫은 환자가 벽을 허물고 서로 대화하며 웃게 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보다 더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끄럽다"며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겨울이 녹고 있다.

◇비둘기 봉사단= 성남시 소속의 호스피스 자원봉사단으로, 현재 70명의 자원봉사자가 수정구.중원구.분당구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 20시간 이상의 기본교육을 이수해야만 현장에 투입되고 월 1회의 심화교육을 받는다. 2002년부터 4년째 활동 중인 이 단체는 연평균 115명의 말기암 환자를 돌보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담당 보건소에 환자의 상태를 보고하는 것은 필수. 담당 간호사는 보고내용을 파악해 환자의 경과를 그때그때 체크하고 환자상태에 따라 방문 등 진료계획을 세운다. 간호사 출신 전영란 회장은 "환자나 환자가족들이 암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단체를 통해 고통을 덜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며 홀로 병을 견디고 있는 독거환자나 환자가족은 언제라도 연락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성남시 호스피스센터 031-729-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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