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공기부양정 잡는 '킬러 로켓' … 21세기 신기전 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사, 삼, 이, 일. 발사!”

 지난 22일 오후 4시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 ADD가 새로 개발한 ‘비밀병기’ 발사실험이 진행됐다. “발사!” 명령이 내려지자 2.75인치(70㎜) 유도로켓이 흰색 연기를 뿜으며 날아갔다. 로켓은 9초를 비행한 뒤 2.8㎞ 떨어진 곳에서 40노트(시속 76㎞)로 움직이던 무인 함정에 내리꽂혔다. 2012년 개발을 시작한 유도로켓의 발사실험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잠시 뒤 이어진 발사실험에서도 표적으로 삼은 무인 함정이 로켓에 정확히 일격을 당하고 침몰했다. 정홍용 ADD 연구소장은 “무인고속정은 3억원짜리인데 이를 침몰시켜 버렸으니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추가 실험을 위해선 3억원을 더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DD는 올 초 2발의 시험발사에 이어 이날 2발을 더 쐈다. 유도로켓은 100%의 명중률을 보였다. 군 당국은 예산에 맞춰 앞으로 6발의 발사실험을 할 계획이다. 결과가 좋을 경우 이르면 내년에 실전 배치된다.

 유도로켓은 종이컵 윗부분 굵기(70㎜)로, 북한 공기부양정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됐다. 북한은 최근 백령도 맞은편 지역에 새로운 공기부양정 기지를 건설했다. 백령도 등 서북도서 지역의 섬들을 기습적으로 점령할 수 있어 공기부양정을 타격하는 무기가 필요했다. 북한 공기부양정은 해상에서는 초고속인 시속 90㎞ 이상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군 관계자는 “북한 공기부양정이 황해도 장산곶에서 출발하면 10여 분 만에 백령도에 닿을 수 있다”며 “우리도 해안포가 있지만 1970년대 사용하던 포탑을 떼어서 설치한 것이라 명중률이 낮고, 사거리도 짧아서 빨리 가동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대공 미사일인 패트리엇이나 공대지(슬램-ER) 등의 유도미사일은 가격이 워낙 비싼 데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선 전투기나 별도의 부대를 보유하고 있어야 해 공기부양정 맞춤형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 ADD는 북한의 반격에 대비해 발사 트럭을 활용해 ‘쏘고 피할 수 있는(fire and foget)’ 방식을 택해, 국산 유도로켓을 개발한 것이다.

 더욱이 한 발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외국산 유도로켓에 비해 국산은 발사 트럭과 탄약을 합쳐 한 발에 수천만원 정도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ADD는 설명했다.

 ADD 관계자들은 새로 만든 유도로켓을 ‘신기전(神機箭)의 후예’라고 부른다. 신기전은 1448년 조선 세종 때 제작된 병기로, 고려 말 최무선이 제조한 화기(火器)를 개량한 것이다. 화약이 연소되면서 가스를 분출시켜 로켓처럼 날아갈 수 있도록 한 로켓형 병기다. 공교롭게도 신기전 발사실험을 한 곳이 안흥종합시험장 부근이었다고 한다.

 새로 개발한 유도로켓의 정확성은 몸체에 지닌 각종 장비에 비밀이 담겨 있다. 유도로켓은 레이더와 트럭에 장착된 타즈(TODS·표적탐지기)가 목표물을 인지한다. 발사 후 어느 정도 날아가면 시커(seeker·탐색기)가 작동하면서 비행 방향을 자체적으로 바꾸며 목표물을 따라간다. ADD는 로켓에 열상탐색기와 관성센서, 열전지, 귀날개, 유도조종장치 등을 탑재했다. 트럭형 발사대에 싣고 다닐 수 있고, 발사에 필요한 인원은 운전수를 포함해 3명이면 된다. 그만큼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군 관계자는 “공기부양정 킬러로 ‘신기전의 후예’가 등장해 서북도서 방어에 한층 힘이 붙게 됐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당초 개발 자체를 비밀에 부치다 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억제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실험 장면을 공개했다.

안흥=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관계기사
[미디어스파이더] 유도로켓 한 발에 수억원?…무기의 세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