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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습의 장」이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가 하는 일 속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며 자신이 이뤄놓은 일에 대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삶은 인간적인 삶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무엇이든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하는 일이 보람있는 일이 되려면 열과 성을 다하여 끈기 있게 노력해야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생각해볼 때 한 인간이 하고있는 일이 아무리 보람있는 일이라 해도 일 그 자체 속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며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 그의 삶은 활기를 잃게되며 마침내는 일하려는 의욕도 능력도 상실하고 만다.
농부는 발읕 갈고 씨를 뿌리며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에, 교육자는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는 일에, 의사는 인간의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일에, 그리고 주부는 안락한 가정을 꾸려 가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여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을때 그들의 삶은 만족케 되며 그들은 행복을 맛보게 된다. 학생이 해야할 가장 보람있는 일은 학업이다. 따라서 학습하는 일에 그들의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하는 학습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 그들의 심신은 피로해지며 점차적으로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그들의 학창시절은 무의미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의 실체에서 지적될 수 있는 문제의 하나는 바로 「학습하는 일에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들 학부모나 교육자들이 자라나는 세대가 그들의 삶을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보람있는 학업생활 속에서 즐거움이 따르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할 것이다.
제5공화국 수립이후 입시를 위한 과외수업 풍조는 거의 그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여전히 입시를 위한 방편으로 교육 본연의 자율성을 회복하지 못한 실정이다. 시험이라는 것은 학습자의 자기능력의 향상도를 사정해 보여 학습습관의 단련의 계기가 된다는 의미에서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시험이 참된 자기의 능력향상 사정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와 타인을 비교하여 우월감과 열등감을 자아내며 입신출세를 위한 경쟁 척도의 도구로서 의미를 지닐 때 그것은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학교는 학교마다 시험의 연속, 부모는 부모마다 공부 또 공부의 구호, 서점은 서점마다 시험문제집의 홍수…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오늘의 수많은 학생들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학습하는 일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나 쫓기는 심정으로 무턱대고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며 오늘을 사는 지혜처럼 생각할 뿐 차분하게 사물을 직시하고 현명하게 사태를 처리하는 지혜를 익히지 못하여 참된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즐기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학생은 살아있는 구체적인 인간이며 인격체다. 인격을 지닌 인간의 활동은 자각적이며 창조적이다. 학습하는 일 그 속에서 참다운 즐거움을 찾는 교육이 이뤄질 때 인간의 창조적 활동력이 활기를 띠며,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와 의의를 자각하며, 오늘을 현명하게 사는 지혜를 익히며, 내일을 위한 소망을 갖게될 것이다. 그리고 창조의 기쁨은 개인의 자기실현은 물론 국가 사회 발전에 참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들 성인들은 자라나는 세대가 자동인형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준에서 그들을 평가하고 강요할 수는 없다.
자라나는 세대가 권위를 익히는 일에 즐거움을 찾을 때 그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발전을 기약하는 것이다. 그들의 내면에서 진심으로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형상으로 복종하는 것은 창조적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며 권위에 대한 도전은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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