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외교를 국내 정치처럼 다루다 국제 고립 자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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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03면

브라질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상파울루에 도착해 전용기 트랩을 내려가고 있다. 박종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하면 곧바로 다음 총리 인선을 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강원택=통합형으로 가야 한다. 야권과 충분히 교감해 포용력을 가진 인물을 임명해야 한다. 형식적이라도 야당에 의견을 구하는 모양새도 괜찮을 것 같다.
▶박철희=국민과의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에게만 조아리는 사람은 필요 없다.
▶김형준=대통령은 안정, 총리는 개혁 스타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여야가 이번에 한번 합의해서 개혁 총리를 뽑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잘 모르는 사람 중에서도 골라야 한다.

[전문가 진단] 박 대통령의 난제 해법은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선 철저한 수사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론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김형준=대통령이 어떠한 조치를 취해서라도 의혹을 밝히겠다고 했다. 지금 상설특검이냐 별도특검이냐를 가지고 충돌하고 있다. 대선 자금 등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이 있는데 특검 임명자가 대통령이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정치개혁은 역대 정권마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대통령이 자신은 개혁 주체이고, 나머지는 개혁 대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핵심은 대통령이 정말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의지가 있느냐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이 정말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강원택=2004년 한나라당 ‘차떼기’ 파동 때 정치개혁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개악된 부분이 많다. 지구당 운영에 돈 많이 든다고 지구당을 없애버리고 돈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현실적으로 정치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돈 주고받는 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 돼야 한다. 못 쓰게 하고, 못 받게 하자는 방향은 곤란하다.
▶박철희=발본색원이란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수용이 가능하냐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개혁은 현실적이지 않다. 합리적이어야 하며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김형준=돈 안 드는 선거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지금 돈 안 드는 더러운 선거다. 오히려 돈이 들더라도 깨끗한 선거가 되는 게 맞다. 법정 선거비용 한도를 현실성 있게 조정하고 그 안에서 선거가 치러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미국처럼 정당이 아닌 후보가 선거회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개혁의 동력과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신뢰가 회복돼야 하지 않을까.
▶박철희=박 대통령이 국민 속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국민한테 지시하는, 너무 제왕적인 대통령이 돼버렸다. 대선 때처럼 국민들과 눈높이를 다시 맞추어야 한다. 잘못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설득할 건 설득해야 한다.
▶강원택=박 대통령은 2004년 당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이번엔 본인도 어느 정도 연루돼 있어 위기라고 봐야 한다. 그때의 절박한 심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형준=박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원칙과 신뢰를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부분이 다 실종됐다. 그리고 통치와 정치를 구분해야 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 세월호나 성완종 사태 등 모두 정치적 문제다. 법이나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나 야당에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다.

-곧 임기 반환점이 된다.
▶강원택=박근혜 정부는 하루빨리 ‘성완종 리스트’ 문제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남지 않는다. 8, 9월을 넘어가면 총선 정국으로 간다. 야당은 더욱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다. 부패와의 전쟁에서 출발해 결국 자승자박이 됐지만, 지금이라도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은 밝혀 의구심을 갖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다 털고 가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국회, 특히 여당과의 관계가 중요해졌다. 옛날에는 자동으로 굴러갔던 당정 관계였지만 지금은 설득과 협력이 필요하다.
▶김형준=29일 재·보선에서 혹시라도 여당이 승리하면 개혁 의지가 희석화할 수 있다. 적당히 넘어가는 ‘거래적 리더’가 되지 말고 선제적으로 솔선수범하는 ‘변혁적 리더’가 돼야 한다.
▶박철희=정치적인 시간은 역산할 줄 알아야 하는데, 가산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외교 문제도 그렇다. 대일 외교에도 이제는 출구전략이 있어야 한다.

-남은 임기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김형준=그동안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통일 대박론, 공무원연금 개혁 등 너무 많은 어젠다를 내놓았다. 결국엔 큰 성과가 없었다. 나머지 임기엔 우선순위를 정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정치를 정상화해 경제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강원택=장기적인 국익 관점에서 본다면 임기 중에는 이뤄지지 않더라도 후임 정권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올바른 정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뭔가 밑그림을 그리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급해진다.
▶박철희=지금 한국 외교는 동아시아에서 세력전이 일어나는 딱 한가운데 서 있는, 위기 상황이다. 미·중에서 러브콜을 받는 축복의 상황이라는 데엔 동의할 수 없다. 위기적인 상황에선 선택을 잘해야 하고 전략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동북아 주변국과의 외교를 안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유연해야 한다. 외교가 직접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주변이 안정돼야 집안일에 집중할 수 있다.

-중·일 접근과 미·일 밀착으로 한국 외교가 고립되는 형세다.
▶박철희=과거사·영토 문제에 강경했던 시진핑이 아베와 손을 잡겠느냐고 생각하다가 결국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우리의 대일·대북 외교, 아무것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나라들은 서로 손을 잡는 양상이 되니 한국이 외교적인 고립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택=얼마 전 일본을 다녀왔는데 서점에 혐한(嫌韓) 서적이 상당히 많아 놀랐다. 한류 효과도 거의 다 사라졌다. 우리는 아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일본 국내 정치의 흐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아베가 설사 한국과의 관계에서 호의적으로 나오거나 역사 문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다 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김형준=한국의 외교적 고립은 예고된 참사다. 박근혜 정부는 외교를 국내 정치 다루듯 했다. 또 실용보다는 원칙외교에 집중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원칙에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을 중단시킨다는 자세였다. 우리는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다. 그동안 나름대로 균형을 이뤄왔는데, 이 정부는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중국 편향적으로 가지 않았나 하는 지적을 받았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외교적 고립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대일 관계에선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핵심인 것 같다.
▶박철희=위안부 문제 자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유연성이 떨어졌다. 모든 것을 거기에 걸었다. 위안부 문제가 안 풀리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 하는 식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이 과거사에 집착하는 나라로 비춰졌다. 과거사 문제가 있어도 다른 부분을 충분히 진행할 수 있었는데, 이를 전제조건처럼 이야기하니 문제가 생긴 거다.
▶강원택=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치도 중요하지만, 먼저 여론이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다. 이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지 말고 다양한 각도에서 풀려고 해야 한다.
▶김형준=박 대통령은 국내정치 경험은 많지만, 외교는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을 불러 토론도 해보고, 태스크포스도 만들고, 특사도 파견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이 부족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박철희=궁극적인 해결은 정상회담을 할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 없는 정상화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여론도 안 좋고 정치적인 스케줄도 좋지 않다.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이 나서서 일본 언론과 접촉해야 한다. 대통령이 아베와 터놓고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다. 특사보다는 밀사가 좋다고 본다.
▶김형준=우리는 초당적으로 외교하는 전통이 없다. 정부는 경직됐다고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계속 교류하고 서로 접합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고립화만 비판하지 말고 정치권이 초당적 외교를 해야 한다.
▶강원택=갑자기 외교정책을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정부가 먼저 뭔가 시그널을 줘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힘들다면 정책적 변화의 신호를 보여주면 된다.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에 변화가 필요한데.
▶박철희=전문가나 제3의 정보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관료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몰라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괜히 자신에게 피해가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듣고 나중에 최종 결론만 내리면 된다. 너무 한정된 소스의 말만 듣는 것 같다. 반대되는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강원택=일본에 대해 다그치듯이 나무라고 반성과 항복을 요구하는 게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안을 찾고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큰 틀만 정해주고 구체적인 것들은 담당 전문가들한테 맡겨야 한다. 만기친람한다면 밑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는 법이다.
▶김형준=일본이 한국 정부의 취약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일본의 교묘한 의중을 간파했어야 하는데 너무 규범적인 시각에서만 본 것 같다. 이제는 대통령 외교정책의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고립될 수 있다.

진행·정리=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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