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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하오체·음슴체·줌마체·합쇼체 … 예의 기준 모호한 인터넷 대화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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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MBC ‘진짜 사나이’에서 육성재가 ‘다나까’로 대답하지 못해 조교에게 혼나고 있다. 국방부는 다나까 말투 사용 금지를 검토 중이다.

인터넷에서는 ‘하오체’라는 것이 한동안 인기였다. 지금도 꽤 자주 쓰이는데 ‘~하오’ ‘~시오’ 등으로 쓰이는, 상대를 보통으로 높이는 존칭 표현이다. 이 표현이 가장 인기를 얻었던 것은 예전 드라마 ‘다모’의 팬카페에서 회원들이 하오체로 대화하던 때다. “오늘도 본방사수하오” “정회원 등업은 어떻게 하오? 부디 답글 달아주오”처럼 쓰였다. 사극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극중에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이면서도 상사와 부하 관계였던 다모와 좌포청 종사관의 관계를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서로가 격식을 갖추면서도 너무 멀지 않게 느껴지는 대화 방식이다.

 또 다른 것으로 ‘음슴체’가 있다. 요약을 중시하는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사연을 정리할 때 ‘~음’으로 끊어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개조식 표현인데 “친구로부터 소개팅을 받았음” “만난 뒤 전화로 안부 삼아 영화 보자고 물었음” “극장 알레르기 있다고 함” 식으로 표현한다. 뭐든지 빨리빨리 요점만 전달해 주기를 바라는 요즘 온라인 문화에 부합하는 방식이다. 보통 “편하게 음슴체로 쓸게”라며 시작한다. 거추장스러운 예의· 격식 차리지 말자는 식으로, 상호 이해가 바탕이 된 카페 같은 곳에서 많이 쓰인다.

 인터넷용어로 ‘보그체’라는 것도 있다. 무분별한 외국어식 표현이 남발하는 패션계를 조롱하는 표현인데, 대표적인 패션잡지 이름을 붙여 빗댔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추럴한 컬러를 메인 테마로 패션의 트렌드 세터이자 셀레브리티인 그녀의 보디라인”. 이와 달리 ‘줌마체’는 말 그대로 온라인 아줌마 커뮤니티의 스타일을 드러낸다. 줌마체의 특징은 다양한 기호와 어미에 ‘~용’ ‘~나’ 등 수다스럽고 재미있는 아줌마들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있다. 특히 줌마체는 리액션이라고 부르는 대화 중의 반응을 과장하고, 의성어와 의태어를 잘 활용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어머’는 ‘엄훠~’로, ‘예쁜’은 “이뿐~” 등으로 강조된다.

 우리말의 존대 방식에는 ‘합쇼체’와 ‘해요체’가 있다(비슷한 이름으로 ‘요조체’ 또는 ‘죠체’도 있다. ‘~요’, ‘~죠’로 끝내는 것을 말한다). 격식을 갖추는 표현인 ‘합쇼체’에 비해 ‘해요체’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인다. 즉 ‘~합니다’보다는 ‘~해요’라는 식으로 자주 쓴다. 더 친근하고 편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해요체’가 반드시 존대만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 문화를 잘 해설하고 있는 온라인 사이트 엔하위키에 따르면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배우 이영애의 ‘너나 잘하세요’가 반말과 ‘해요체’ 존대어를 섞어 만든 대표적인 명대사로 꼽힌다. 최근 “언니, 저 밉죠?”가 예의가 있느냐 없느냐 논란이 되었던 연예인 언쟁 사건만 봐도 대화체는 형식뿐만 아니라 어감도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근현대 들어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문장서술의 방식이 급변했지만 인터넷은 한발 더 나아가 문어체와 구어체의 간극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분명 글을 쓰지만 사람들은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는 사람도, 실제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처럼 느낀다. 카카오톡 대화방이 그렇다. 외형은 글로 주고받는 필담이지만 실제로는 말로 주고받는 대화다. 그래서 이 대화 방식에 서로의 존대 방식, 친밀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조사를 해보면 어떤 이는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날까 봐 전화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전화 드려도 되는지 미리 카카오톡으로 여쭙는다고 한다. 이처럼 인터넷과 모바일 대화 방식에서 사회적 예의라는 기준은 아직 혼란이 심하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진짜 사나이’에 보면 군대식 용어, 이른바 ‘다나까’체가 나온다. 의미를 분명히 하고 규율을 중시해야 하는 군대에서 모든 문장의 끝을 ‘~다’나 ‘~까’로 통일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에서 흔히 쓰는 ‘~요’라는 어미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표현은 강력한 사회적 위계를 보여주는 용도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장 민주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할 일부 대학에서 요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이런 ‘다나까’체를 강요하고 있다는 보도가 종종 있다. 다양한 대화체가 감정을 표현하는 인터넷과는 달리 대학 캠퍼스가 삭막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seerl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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