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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뭐 샀느냐"고 묻는 2035, 재테크가 돼야 결혼도 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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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미혼 청춘남녀의 재테크 중 으뜸은 뭐니뭐니해도 ‘엄마 펀드’ 혹은 ‘아빠 적금’이다. 매달 월급에서 용돈만 조금 떼고 나머지 전부를 부모님께 맡기는 상품이다. 재량껏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되다 보니 조금 갑갑한 게 흠이지만 사실 수익률은 최고다. 결혼 전까지 꾸준히 납입하면 수천만원을 보태서 결혼 자금이나 신혼집으로 돌려받는다. 이렇게 든든한 자산운용법이 또 없는데 아쉽게도 이건 집안 형편이 좀 넉넉해야 가능한 경우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년. 내 돈으로 명품을 사거나 해외여행 가는 것만으로 마냥 뿌듯하던 때는 지났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결혼자금도 신경 써야 하고 혹 결혼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혼자 살 집도 마련해야 할지 모른다.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야 빤하다. 1~2년 후라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지난해엔 그래도 한 1000만원 모아 정기예금 들어두면 30만~40만원은 붙었던 것 같은데 만기가 돼 은행에 가보니 금리혜택 다 모아봐야 1%대란다. 재테크가 정말 간절하다.

 빚을 내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사는 ‘모험가’들을 몇 봤다. 아직까지 크게 성공한 경우는 못 봤고 오히려 대출에 발목이 잡혀 결혼을 미루는 친구는 있다. 주말마다 분양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안목을 기르는 친구, 10년 뒤 오타쿠들에게 되팔 요량으로 레고 스페셜 에디션을 사 모은다는 친구의 친구…, 명품백도 자산이라 주장하며 과감히 미래소비 대신 현재소비를 택한 친구도 있다.

 주식도 기웃거려 봤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넌 결혼 안 하느냐” 다음으로 나오는 말이 “주식 뭐 샀느냐”다. 보름 전 중학교 친구 결혼식이 끝나고 커피숍에 모여 앉은 자리. 상한가를 달리는 모 제약회사 주가 얘기가 나왔다. 1년 동안 주가가 2.5배 뛴 종목이다. 누군가 “지난해에 사놨으면 대박인데”라고 입맛을 다셨고, 다른 녀석은 “지금 안 산 걸 내년에 또 후회할지 모르지”라고 대꾸했다. 열흘 뒤 이 주식은 30% 뛰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며칠 뒤엔 어느 코스닥 상장사가 가짜 백수오를 팔았다는 의혹에 주가 전체가 푹 꺼진다. 나 같은 ‘개미’가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안 쓰고 모으기’ 말고 뾰족한 수가 없다. 돈주머니가 헐렁한데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결혼 적령기 인구 비율이 줄었다고 해도 어른들 눈엔 ‘혼인 쇼크’로 보일 만한 수치다. 첫 결혼도 남자는 서른셋, 여자는 서른이 다 되어서야 한다는데 내가 올해 스물아홉이니 채 1년이 안 남았다. 솔직히 결혼할 남자가 없는 것보다 제자리걸음인 통장 잔액이 더 걱정이다. 결혼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건지 모른다.

이현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