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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빨간 롯데는 잊어라" 엘페이·엘포인트로 재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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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엘페이(L-pay)’와 포인트 시스템인 ‘엘포인트(L-point)’를 앞세워 ‘아시아권 롯데 생태계’를 본격화한다. 엘페이는 롯데판 알리페이(중국 알리바바의 전자결제 서비스)로 이르면 올해 중 선을 보인다.

 신 회장이 이런 구상에 들어간 데엔 아버지 신격호(93) 롯데 총괄회장의 의견이 영향을 미쳤다. 신 총괄회장은 평소 교분이 있던 일본 CCC(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의 마스다 무네아키(64) 회장에게서 CCC의 T포인트 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도입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T포인트는 일반 가맹점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일본·중국·괌 등 해외에서도 사용된다. 한국에서도 OK캐시백과 마일리지 교환이 가능하다. 국내외에서 같은 포인트를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시장 공략이 용이해진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이에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3월 그룹 내에 10명 규모의 ‘e2(e-커머스 2.0) 프로젝트팀’을 발족시키고 계열사별로 담당 임원을 정했다. e2 프로젝트팀은 롯데그룹의 신성장동력인 ‘옴니채널(Omni-channel)’ 전략을 연구한다. 옴니채널이란 인터넷·오프라인·모바일 등 모든 쇼핑 채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매장처럼 쇼핑하고 결제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신 회장은 ▶온·오프라인 회원제 통합 ▶모바일 결제 기반 구축 ▶빅데이터 고객관계관리(CRM) 등 9개 과제를 정했다. 또 드론 택배나 모바일 결제 등 신규 정보기술(IT) 전략을 연구하기 위한 싱크탱크인 ‘롯데 이노베이션 랩’도 꾸려졌다.

 9대 과제의 핵심 격인 엘포인트-엘페이 생태계 구축은 김태홍 롯데멤버스 비즈컨설팅부문장(상무), 차재원 이비카드 컨버전스부문장(상무)이 이끌고 있다. 본격적인 전략의 출발은 롯데멤버스가 지난 20일 엘포인트를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엘포인트는 롯데카드의 롯데포인트와 롯데닷컴의 롯데패밀리를 합친 것이다. 회원수는 3100만 명으로 국내 최대 수준이다. 롯데멤버스는 올해 초 롯데카드 포인트사업부의 직원 40명을 분사시켜 만들어졌다.

 업계에서는 롯데멤버스의 분사를 금감원 등 정부당국의 규제가 많은 카드사의 범위를 벗어나 OK캐시백을 운영하는 SK플래닛 같은 포인트 전문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따로 이유가 있었다. 롯데멤버스 전략팀 관계자는 “엘페이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엘포인트를 만들고, 2025년까지 엘페이가 아시아 전역에서 통용되도록 플랫폼(가맹점)을 늘려나가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롯데카드의 결제망과 백화점·마트 등 롯데의 유통망을 통한다면 당장이라도 엘페이 서비스가 가능하다. 문제는 해외다. 롯데그룹은 우선 기존에 설립한 롯데멤버스 중국·인도네시아 법인 외에 지난달 말 ‘롯데멤버스 베트남’을 세우고 동남아 지역에서의 결제 네트워크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롯데마트가 진출해 중산층 소비자들에겐 롯데 브랜드가 익숙하다. 중국에는 롯데마트 103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는 39곳, 베트남 10곳이 있다. 롯데면세점은 자카르타·싱가포르·오사카·괌 등 5곳에 지점이 있다.

 롯데멤버스는 괌에서도 호텔을 중심으로 엘포인트 결제 시스템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엘포인트는 앞으로 유효기간(2년)을 없애고 장기적으로는 엘페이와 통합될 계획이다.

 롯데멤버스 관계자는 “엘포인트를 만들면서 신동빈 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롯데의 색깔을 버리라는 것’이었다”면서 “그래서 로고 색깔도 롯데의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만들었다”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엘페이를 개발하는 와중에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시작으로 중국 알리바바의 알리페이가 사용 가능하도록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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