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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과 최루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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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함박꽃이 그야말로 함박만하게 피었다. 시절은 어수선해도 자연은 싱그럽기만 하다.
그처럼 우아한 꽃을 두고 하필이면 「작약」(작약)이라는 이름을 붙인 중국사람들의 심경을 알 길이 없다. 꽃보다는 재(약)가 더 요긴하다는 말인가. 하긴 영어의 「피어니」(peony)라는 이름도 「약」과 인연이 깊다.
고대 그리스에 「파에온」이라는 명의가 있었다. 그는 트로이전쟁 중에 신들의 전상을 말끔히 고쳐준 전설적 인물이다. 당세의 철인 「플라톤」도 그에게서 상처를 치료받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 약재가 바로 작약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오늘의 「피어니」다.
실제의 약효로는 진통제로 알려져 있다. 뿌리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한약에선 이뇨, 거담(거담)제로도 쓰인다.
우리 선조들은 역시 꽃은 꽃으로 보았다. 꽃 이름에서 약 냄새가 풍기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함박꽃이 우리 역사상 처음 등장한 것은 8백년도 넘는다. 고려 의종은 유행을 좋아해 하루는 상림에서 꽃놀이를 하며 군신들에게 「작약시」를 짓게 했다. 이때 황보탁(황보탁)이라는 현량의 시가 임금의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 꽃도, 그 현량도 모두 일세에 명성이 드높게 되었다.
제국공주의 고사도 있다. 한 시절 천하를 흔든 원세조의 딸로 고려 충렬왕의 후가 된 그녀는 어느 초여름 수??궁 향각의 가원을 거닐다가 탐스럽게 핀 함박꽃을 보았다. 그 아름다움에 끌려 꽃가지를 꺾어 어루만지다가 무슨 일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 뒤 며칠만에 공주는 세상을 떠났다. 역시 이 꽃을 역사상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함박꽃을 노래한 가람(이병기)의 시조에 『…제여곰 수줍은 듯이 고개 절로 숙인다』는 구절이 있다. 꽃말도 바로 그 수줍음이다.
작약의 종류는 흔히 자웅(자웅)으로 나눈다. 물론 암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암작약은 심홍색으로 더 아름다와 보일 뿐이다.
중국 작약이 언제 우리나라에 옮겨졌는지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작약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15세기 무렵이다. 일본 고전에 「고려작약」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산지는 중부아시아 일원.
당시인 소동파의 시에 마음이 울적해 작약 한가지를 꺾었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최루탄 가스 속에서도 잊지 않고 함박꽃을 피워주는 자연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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