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39. 5회 아시안게임<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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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 최강 일본 선수들을 잇따라 꺾고 남자 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김충용 선수가 시상대 맨 위에 섰다.

1966년 12월 16일 기티카초론 실내체육관. 제5회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를 노리는 한국과 태국이 사각의 링에서 만났다. 이때까지 한국은 여섯 개, 태국은 아홉 개의 금메달을 따고 있었다. 금메달 세 개 차이를 권투에서 극복해야 했다. 우리는 11개 체급 중 여덟 개 체급에서, 태국은 여섯 개 체급에서 결승에 올라있었다. 이 가운데 라이트플라이급.페더급.웰터급.라이트헤비급 등 네 개 체급의 결승에서 한국과 태국 선수가 격돌하게 됐다. 대세를 가를 건곤일척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육관 안팎은 팽팽한 긴장감에 싸였다. 1만5000여 관중의 시선은 눈부신 조명 아래 설치된 링에 고정됐다. 태국 경찰들은 인간사슬을 만들어 링 주변을 에워싼 채 불상사에 대비했다. 남자 농구 경기에서 한국과 태국 선수들이 난투극을 벌이고 태국 관중까지 가세해 난투극으로 번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 자욱한 담배 연기. 최악의 조건 속에서 태극 전사들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태국동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이기자 대한 건아"를 합창했다.

서상영 대 두앙 차 콤프(태국)의 라이트플라이급 결승에서 콤프가 4대 1로 이기자 태국 관중의 함성이 터졌다. 우리는 플라이급의 손영찬이 인도네시아의 안와르를 5대 0 판정으로 이겨 권투에서 금메달 수를 1대 1로 만들었다. 밴텀급에서는 태국의 우돔파이 치쿨이 우승했다. 페더급에서 한국의 김성은이 태국의 찬드라 수콘에 5대 0 판정승을 거두자 태국은 라이트웰터급 금메달로 맞섰다. 웰터급에서 한국의 박구일이 태국의 송상을 4대 1 판정으로 이겨 일곱 개 체급의 결승전이 끝났을 때 금메달 수는 한국과 태국이 똑같이 세 개였다.

라이트미들급에서 이홍만이 우승했지만 미들급의 이홍택은 안타깝게도 은메달에 그쳤다. 그래서 한국의 총 금메달 수는 열 개, 태국은 12개가 됐다. 이런 가운데 라이트헤비급에서 한국의 김덕팔과 태국의 찬드라마가 금메달을 놓고 맞섰다. 김덕팔의 철권이 찬드라마를 링 바닥에 눕히자 태국 관중은 기가 죽었다. 이제 한국과 태국의 금메달 수는 한 개 차이로 줄었다. 은메달과 동메달 수는 태국보다 훨씬 앞서고 있어 금메달 하나만 더 따면 종합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이 더 없었다.

이때 영웅이 등장한다. 탁구 남자 단식의 김충용 선수. 놀랍게도 세계 최강의 일본 탁구를 무너뜨리고 금메달을 땄다. 준결승에서 기무라 고지를, 결승에서 하세가와 노부히코를 각각 3대 2로 물리친 것이다. 한국 남자 탁구가 국제 무대에서 일본을 제압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김충용 선수의 수훈으로 우리는 금메달 12개, 은메달 18개, 동메달 21개를 기록해 종합 2위 목표를 달성했다. 나는 감격했다. 그날 밤 김충용 선수를 무동 태워 날이 샐 때까지 방콕 시내를 쏘다니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

민관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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