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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칠레 FTA 비준 늦춰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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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이 칠레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 비준을 얻지 못한 채 마냥 낮잠을 자고 있다. 지난 2월 양국 정부가 협정을 체결할 때만 해도 우리도 마침내 FTA 추진에 성공했다며 다행스러워했다.

그런데 이제 칠레는 곧 비준안을 의회에 상정, 처리하리라는 소식인 반면 우리는 비준 통과가 불투명해 대외신인도의 추락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라니 답답하기만 하다.

현재 국회의원 중 전체의 과반수인 1백40명이 농민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비준 반대 운동에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정치권 일각에선 비준 처리를 미루자는 움직임도 있어 이러고도 국회가 경제위기를 걱정하고 국제경쟁력을 운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리 의원들에게 표가 전부라하나 이해집단의 눈치보기가 도를 넘어선 것이다.

정부가 패키지로 처리하기로 한 FTA 농업지원특별법 추진도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 안은 향후 7년간 8천여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피해 농가를 돕자는 게 골자다. 그러나 기금 재원의 상당 부분을 기업에 부담시킨다는 데서 애초부터 문제가 적지 않았다.

그나마 이를 놓고 기획예산처는 농림부가 재계와 접촉해 기금출연 약속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나 농림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이를 확보해줘야 한다고 주장, 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칠레와의 무역협정은 그동안 논란 끝에 쌀과 사과 등 칠레가 경쟁력있는 품목은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또 포도는 비생산기인 겨울철에 계절관세를 적용하며 만약의 경우 칠레만을 대상으로 긴급관세 발동을 할 수 있게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반면에 칠레는 우리의 주요 공산품시장이자 배후인 중남미시장 진출의 교두보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협상에서 타결된 FTA를 의회가 비준을 거부한 예는 한 번도 없다. 그만큼 각국이 자유무역에 거는 자세는 거의 결사적이다. 이번 비준 처리가 우리의 무역자유화 의지를 국제사회에서 평가받는 시험대임을 정부와 의원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