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박 대통령·김무성 동반자 관계로 … 친박계는 퇴조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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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22일 인천시 강화문화원에서 열린 현장선거대책회의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 대표는 특위 시한이 9일밖에 남지 않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에게 양당 ‘2+2’ 회담을 정식 제안했다. [김성룡 기자]

56자에 불과한 ‘성완종 메모’가 정치권에 던진 충격은 메가톤급이다. 메모에 이름이 등장한 인사 중 이완구 국무총리가 직을 내놓은 건 하나의 신호탄이다. 무엇보다 성완종 메모가 여권의 권력지형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친박계는 퇴조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매끄럽지 못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관계가 ‘동반자’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22일 인천 강화에서 열린 현장 선거대책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우윤근 원내대표와 만나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2+2’ 회담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친박 비리게이트 국면전환용에 불과한 제안”(강기정 정책위의장)이라고 일축하자 김 대표는 성남 중원의 재·보선 지원 유세 도중 회담을 다시금 제안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연기하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어렵다 ”면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해외순방을 떠나기 직전 김 대표와 40여 분간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해외 순방 중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표가 재·보선 국면에서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챙기는 것은 이런 박 대통령의 당부에 부합하는 행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권이 위기에 처하자 박 대통령이 현실을 인정하고 김 대표 쪽에 손을 내밀면서 김 대표와 당에 자연스레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실제로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지난 16일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 과정에서도 김 대표는 여권 내부 상황을 적절히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통령과 의 회동 직후 “대통령이 귀국 후 이 총리 거취를 결정할 것”이란 발표가 나오자 당 일각에선 반발이 나왔다. 한 의원은 “대통령에게 ‘당장 이 총리를 경질하라’고 요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 일주일만 참아 달라는데 그게 그리 힘드냐”고 설득하며 내부 혼란을 최소화했다.

  청와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유승민 원내대표도 이번엔 호흡을 조절하며 김 대표와 손발을 맞췄다. 유 원내대표 역시 “이 총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 지만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도 여당의 책임”이라며 당내 불만세력을 다독였고, 이 총리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시간을 줬다.

 김무성-유승민 지도부가 친박계를 대신해 실질적인 ‘위기 관리자’로 떠오르고 있는 반면 친박계는 크게 위축됐다.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의원과 허태열·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핵심들이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한 데 이어 이 총리가 성완종 파문의 직격탄을 맞고 사의를 표명하면서다.

 정윤회 문건 파문 이후 당과 청와대는 상황에 따라 시소게임을 하듯 서로 힘이 실렸다 빠졌다를 반복해 왔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인해 당·청은 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친이계 중진 의원은 22일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특성상 당으로 힘이 기우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박 대통령도 국정운영의 방식을 바꿔 당과 함께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대통령이 여야 가릴 것 없이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고 정치개혁에 고삐를 죄겠다는 건 당·청 관계의 역전을 허용치 않겠다는 뜻”이라며 “다만 주요한 개혁의 처리를 위해선 당과 국회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김 대표와 동반자적 관계는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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