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질문이 불쾌하다는 홍준표 지사, 그래도 기자는 또 물어야 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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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거취를 묻자 그는 “불쾌하다”고 했다. [뉴시스]

22일 오전 7시55분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 앞 현관. 검은색 스타렉스 승합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던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계단 위 현관에서 기다리는 10여 명 기자들을 보더니 뜻 모를 웃음을 지었다. “허허, 참.”

 기자 중에 누군가가 물었다. “어제 관사에서 지내셨습니까.”

잠시 후 돌아온 답은 이랬다. “오늘부터는 내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출근길에 이러는지.” 실제 이어지는 물음에 홍 지사는 딱 부러진 답변을 하지 않았다. “수사가 더디게 진행된다는 여론이 있다”고 하자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검찰이 여론 재판에 휘둘리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거북하다는 투의 답변은 전날에도 있었다. 비슷한 시간, 같은 장소에서였다. 거취에 대한 어느 기자의 질문에 홍 지사는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거취 표명 운운 얘기하는 것은 불쾌하다”며 “사실관계는 검찰에서 밝힐 것이다. 아침마다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질문한 기자를 바라보며 “어디 기자냐”고 묻기도 했다.

 지난 10일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고 13일째. 홍 지사가 변한 듯하다. 특유의 달변이 사라졌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특유의 직설화법을 이용해 생각을 분명히 표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결코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는 일로 열흘 넘게 출근 때마다 기자들을 대하다 보니 지쳐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직설화법이 사라진 건 처음부터였다. 리스트가 공개된 10일 기자회견을 자청했을 때부터 그랬다. “메모(성완종 리스트)를 악의나 허위로 썼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당 대표까지 한 사람이니 누군가 측근을 빙자해 접근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가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위성욱
사회부문 기자

 기자들 질문에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나타낸 21일에는 “내가 왜 성완종 리스트란 올무에 얽히게 됐는지 그것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보고 있다”고 했다. 답변에 숨은 뜻이 “뭔가 짚이는 음모 같은 게 있다”고 느낀 건 기자만이 아니었다. 기자의 지인들도 대부분 “속뜻이 뭐냐”고 궁금해했다.

 도지사라는 공직자로서 언론에 “오늘부터는 내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 적절한지 따져보는 건 놔두겠다. 현 파문에 신경 쓰기보다 경상남도 행정에 힘을 쏟고, 또 수사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의견 피력을 자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홍 지사의 애매한 발언에 국민들의 궁금증은 커지고 있다. 그래서 기자는 내일 아침 또 경남도청 현관에서 출근하는 홍 지사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말을 않겠다”고 한 홍 지사에게 또 물어볼 수밖에 없다. 기자는 그렇게 질문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니까.

위성욱 사회부문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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