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 꿈꾸는 김동한 "바둑판에는 장애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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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93년 2월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는 아이에게 ‘김동한(金桐漢)’이라고 이름 붙였다. 큰 오동나무처럼 단단하게 자라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밀검사 결과 아이의 오른쪽 무릎에서 염증이 발견됐다. 수술을 받으면서 아이는 평생 다리를 절게 됐다. 두 다리의 길이도 같지 않았다. 자라서는 지체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동한이가 여섯 살 되던 해, 병실에서 아들을 지켜보던 부모는 이 아이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바둑돌을 쥐여주었다. 몸이 아닌 머리로 정면 승부를 펼치라는 의미에서다. 이때부터 바둑판은 동한이의 가장 큰 놀이터였다. 한국기원 연구생까지 했던 동한이는 장애인 바둑기사의 1인자가 됐다. 최초의 장애인 프로기사를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애인 바둑기사 1인자 김동한(22) 아마 6단. 그는 “장애인에게 바둑은 최고의 여가생활”이라며 “특히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재능을 꽃피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 18일 열린 제11회 서울시 장애인 바둑대회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승 했는데.

 “장애인 바둑대회에 나가면 내 나이가 어린 편이라 쉽게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들 하신다. 하지만 시니어 기사 중 실력이 센 분이 많다. 쉽게 우승을 자신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기원 공식 기력은 아마 6단이다. 바둑 사이트 사이버 오로와 타이젬에서 각각 아마 7단, 아마 9단이다(둘 다 가장 높은 등급이다).”

 - 기력이 상당하다.

 “여섯 살에 바둑을 시작해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계속 바둑 공부를 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기원에서 연구생을 지냈다. 연구생 나이 제한인 만 18세에 걸려 연구생을 그만뒀다.”

 - 연구생을 그만 둘 때 많이 아쉬웠겠다.

 “당연히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게 바둑이고 내가 좋아서 한 거라 바둑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또 바둑과 관련된 직업이 프로기사 말고도 다른 게 많다는 걸 알고 계속 바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바둑이 좋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승부가 좋다. 몸이 불편하지만 바둑판에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싸울 수 있다. 바둑판 위에서 치열하게 승부를 겨루면서 나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 현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3수를 해서 명지대 바둑학과 14학번으로 입학했다. 3월에 다리 수술을 해서 현재는 휴학 중이다. 또 연구생 자격으로는 출전할 수 없었던 각종 아마 바둑대회에 활발히 도전하고 있다.”

 - 아마 바둑대회에 나가면 성적은 어떤가.

 “92회 전국체전 학생부 은메달, 32회 장애인체전 금메달을 땄다. 또 제15회 이창호배 4강 진출, 2013 올레배 아마 대표 선발, 제42기 하이원 리조트배 명인전 아마 대표 선발 등의 성적을 거뒀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여전히 프로기사가 되는 게 첫째 목표다. 일반인 입단대회가 어렵다면 포인트를 채워서라도 입단하고 싶다(입단 포인트 100점을 채우면 입단 가능하다). 2013년 올레배, 2014년 명인전에서 포인트 10점씩 받았다. 100점을 언제 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꼭 입단하고 싶다.”

 - 입단하면 장애인 최초의 프로기사다.

 “그렇다. 아직 장애인 프로기사가 한 명도 없다. 전국 장애인 바둑협회 현명덕 회장님도 내가 프로기사가 되면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힘이 될 거라고 말씀하신 적 있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 아직 장애인 기사가 한 명도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기력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인 중 하나가 체력이다. 장애인 대부분 체력이 일반인보다 약하다. 보통 바둑은 머리 싸움이라 몸이 불편한 게 크게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취미로는 크게 상관없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체력이 좋지 않다는 건 마이너스다.”

 - 현재 입단 시스템에서 아쉬운 부분은.

 “올림픽에 패럴림픽이 있듯 바둑에도 장애인 기사들을 위한 혜택이 있으면 한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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