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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35> 이탈리아 로마 산 주세페 데 모레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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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교육은 서로 경쟁하기보다 학생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돕는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열린 체육대회는 한국의 체력장처럼 멀리뛰기·오래달리기·높이뛰기 등을 실시하지만 모든 종목을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걸 3~4개 고를 수 있다. 이어달리기 분야에서 1등을 한 진오군 반 학생들이 목에 메달을 걸고 우승컵을 들고 있다.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아빠 조성원씨와 아들 조진오군, 엄마 유상희씨.

이탈리아 로마에 산 지도 올해로 15년째다. 2000년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 왔다. 남편은 성악, 나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이탈리아에 자리 잡은 지 3년 후 태어난 아들 진오는 국립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쳐 현재 산 주세페 데 메로데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초·중·고 과정이 모두 있는 산 주세페 데 메로데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 1680년에 설립돼 335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역사가 긴 만큼 학부모들한테 인기도 좋다. 공부를 많이 시키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다. 진오가 입학할 때 2개였던 학급은 지난 1년 사이 3개 학급으로 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이 전학 오는 바람에 반을 하나 더 개설했다.

 이탈리아의 교육열은 한국처럼 높지 않다. 단 정치가·은행장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일부 사람들의 경우엔 한국 못지않게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쓴다. 자녀를 대학에 보낼 생각이 없는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은 집 근처에 있는 공립학교에 보낸다. 사립학교는 1년에 6000유로(한화 약 700만원)가 들지만 공립학교는 의무교육 기간인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무상으로 다닐 수 있다.

고교 5년 과정 졸업하면 전문대 수준 학력

교육열이 낮은 건 교육제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탈리아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5년이다. 한국 학생보다 고등학교를 2년 더 다니기 때문에 전문대 수준의 학력을 갖는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공무원이 되거나 은행 등에 취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에는 실업률이 높아져 도피성 대학 진학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처럼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야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나는 원래 공립이나 사립이 아닌 국제학교에 보낼 생각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대학에 진학시킬 계획이라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탈리아 공교육에서는 영어 실력을 키우기 어렵다. 영어를 프랑스어·독일어처럼 제2외국어의 하나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또 영어 실력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능숙한 발음으로 원어민과 거리낌 없이 대화해야 ‘잘한다’고 평가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문법이 틀리고 발음이 엉망이어도 자신의 뜻을 전달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한국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국제학교 입학을 반대했다. 수업만 영어로 이뤄질 뿐 교사들의 수준이 낮다는 게 이유였다. 또 국제학교는 주재원, 외교관 자녀가 대부분이라 학생들이 1~2년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이가 유년기에 또래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고 봤다.

 결론적으로는 사립학교인 이곳에 아이를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입학하기 전에는 ‘생일파티 하는데 1만 유로(한화 약 1154만원)가 든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겪어보니 학생과 학부모 수준이 높다. 또 명문학교다 보니 국제학교만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활하는 것도 좋다. 반 전체 25명 중 진오를 제외하고도 페루·러시아 학생이 있고 부모가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 경우도 3~5명 정도 된다.

335년 된 명문 사립중, 다양한 융합수업 장점
매년 두세 명 유급되지만 성적 줄세우기 없어
교사 신뢰도 높아 구두평가에도 학부모 납득

답 틀려도 풀이 맞으면 정답으로 인정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융합수업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정부 주도로 융합수업이 이뤄진다고 들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모든 과목을 연계한 수업을 해 왔다. 수학과목이 좋은 예다. 한국에서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전체 학생의 3분의 2가 넘을 정도로 수학에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다.

 이곳은 수학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르다. 한국처럼 수학 공식을 외워 시험 문제를 푸는 식으로 ‘수학을 위한 수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건축과 미술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수학을 학습한다. 예컨대 ‘피타고라스 정리’를 배울 때도 ‘직각삼각형 밑변의 제곱과 높이의 제곱을 더한 값은 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공식을 외워 문제를 푸는 것보다 이 개념이 건축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익히는 게 더 중요하다. 역사수업도 마찬가지다. 연도와 사건만 줄줄 외우는 게 아니라 세계 역사가 수학·음악·미술·과학·건축 등의 각 분야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돕는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도 장점이다. 수학과목 시험을 치를 때도 답만 맞힌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풀이과정도 꼼꼼히 써야 한다. 정답을 맞혔어도 풀이과정이 틀렸으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고, 반대로 정답이 틀렸어도 해당개념을 제대로 익혀 문제를 해결했으면 정답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인 거다.

수업 시간 구두평가 치뤄 복습 생활화

이탈리아에서는 학교 곳곳에서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로마에 있는 산타안젤로성(城)으로 체험학습 간 진오(가운데)군과 친구들. 산 주세페 데 메로데 도서관 모습. 학교 안에 있는 성당에서 열린 입학미사. 카톨릭교가 국교인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학교에 성당이 딸려 있다.

모든 과목은 학기말 지필시험 외에 구두평가를 치른다. 한국 학생들은 평소에 펑펑 놀다가 시험 2~3일 전부터 밤새 공부해도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벼락치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교사는 매 수업 시작 전에 전체 학생 중 2~3명을 지목해 이전에 배운 내용에 대해 물어본다. ‘그리스 역사’에 대해 배운 후에는 “아테네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언제 이름이 불릴지 모르니 매 시간 복습을 철저히 한다. 또 줄줄 외우기만 해서는 교사의 돌발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으므로 폭넓게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구두로 평가한다고 점수를 후하게 주는 일은 없다. 교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면 유급 당할 수도 있다. 국어·역사·과학 등 10여 과목 중 하나라도 6점 이하 점수(10점 만점)를 받으면 해당 학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 만약 학생이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로 아티카 지방의 중심도시이며 현대 그리스의 수도다”라는 식으로 교사가 만족하는 답을 하면 좋은 점수를 받지만, 내용이 틀리거나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점수가 깎이는 식이다.

 보통 초등학교는 전교에서 1~2명, 중학교는 한 반에 2~3명 정도 유급을 한다. 한국이라면 교사의 주관적인 평가를 믿을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비난의 들끓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 교사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의미다. 낮은 점수를 줄 때도 학생에게 어떤 내용이 부족해 해당 점수를 줬는지 설명하고 납득시킨다. 또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게 아니라 누구나 열심히 하면 만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경쟁심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건 틀린 게 아냐” 다양성 존중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 교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탈리아는 초등학교 5년 내내 4명의 교사가 한 반을 맡는데, 담임교사가 2명, 보조교사 2명 있다 담임교사는 국어·역사·미술 등을 담당하는 인문계열과 수학·과학 등을 가르치는 자연계열로 나뉘고, 보조교사는 보통 방과 후 시간을 책임진다. 처음에는 똑같은 교사 밑에서 똑같은 애들과 5년 동안 함께 생활하는 데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실보다는 득이 많았다. 교사는 아이 재능과 적성을 파악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가르쳤고, 5년간 함께 생활한 아이들과는 친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탈리아 교사들에게는 수업을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는 거다. 여기에는 모든 아이들이 각기 다른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계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달리기가 빠른 사람이 있고, 미술적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 있다는 논리다. 진오도 원래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초등 때 담임교사가 “수학적 감각이 있다” “계산 능력이 뛰어나다”고 지속적으로 칭찬하고 이끌어준 덕분에 수학에 더 자신을 갖게 됐고 전국수학경시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가장 고마운 건 따로 있다. 반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이었던 진오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거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느리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진오는 이탈리아 학교에 적응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을 거다. 이탈리아 사람과 자신의 외모가 다르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는 틈만 나면 반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세계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모든 문화는 소중하다. 이탈리아가 역사가 길다고 미국·한국 등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는 식으로 문화상대주의를 강조했다. 덕분에 아이는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이후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어린 후배 돌보며 배려 가르쳐

이탈리아에서 살다 보면 사람들이 약자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교통신호는 장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노약자·임산부·어린이가 무단횡단을 할 때는 모든 차가 멈춘다. 또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넘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가가 도와주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처음에는 국민성이려니 했는데 진오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야 조기 교육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탈리아 유치원은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보통 3세부터 다니는 사람이 많다. 한국처럼 4·5·6세반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한 반 3~5세의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있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조기 인성교육의 힘이 있다. 5세 된 선배들이 막내인 3세를 자연스럽게 돕는 구조다. 한창 자라는 시기의 아이들은 1~2년만으로 키나 몸무게, 행동발달능력 등이 두드러지게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세짜리가 간식 먹거나 신발 신을 때 어려움을 느끼면 교사가 시키기도 전에 5세짜리가 나선다. 그들도 3세 때 선배들에게 도움 받은 기억을 갖고 있어 자신보다 나이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런 조기 교육은 초·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아이들이 바른 인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 자신보다 힘이 약하거나 장애를 가진 애를 따돌리고 무시하기보다는 모두가 나서서 돕는다. 이탈리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없는 이유도 이런 교육 덕분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엄마 유상희(42·이탈리아 로마·피아니스트)
정리=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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