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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다송' 99년 만에 퇴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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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리기다소나무의 잎. 2개씩 나오는 재래종 소나무와 달리 잎이 한곳에 3개씩 붙어 있다.

우리나라 산을 푸르게 만든 산림녹화사업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미국산 리기다소나무가 국내에 들어온 지 99년 만에 퇴출된다.

산림청은 12일 "벌채 적정 시기(25년)가 지난 전국 리기다소나무림 17만7000여ha(5억3100여만 평)를 내년부터 10년간 연차적으로 베어낸 뒤 참나무나 유실수.약용수 등 소득이 높은 나무를 대신 심기로 했다"고 밝혔다.

벌채 대상은 전체 리기다소나무림(48만ha)의 37%에 해당하고, 리기다소나무를 제외한 전국 일반 소나무림(152만3000ha)의 11.6%에 달하는 넓은 면적이다. 산림청은 산사태가 우려되는 곳 등 꼭 필요한 지역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 벌채키로 했다. 베어낸 나무는 콘크리트를 대신해 환경친화형 산림 복구용 옹벽재로 쓰거나 펄프용재 등으로 일반에 공급한다.

전체 벌채 대상 면적의 96%에 달하는 사유림에 대해서는 새로 나무를 심는 비용(ha당 300만원 선)의 80~90%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산주에게 보조해 준다.

?왜 퇴출되나=리기다소나무는 1907년 일본인 학자 우에기(植木) 박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됐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래 소나무 5종 가운데 전국에 가장 많이 심어져 있다. 이 나무는 건조하거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속성수인 데다, 재선충.솔잎혹파리 등 병에도 강하다.

정부는 1973~87년 두 차례에 걸쳐 치산녹화 사업을 벌이면서 민둥산을 없애고 주민들의 땔감으로 쓰기 위해 전국 16만7000ha에 리기다소나무를 심었다. 이 시기에 심은 나무 가운데 이태리포플러(53만1000ha).낙엽송(36만4000ha)에 이어 셋째로 많았다.

그 후에도 사방사업 등을 하면서 전국 곳곳에 낙엽송과 함께 리기다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하지만 치산녹화 사업이 끝난 요즈음 이 나무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외래종인 데다, 다른 나무들보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탓에 정부나 산주들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현재 25년생 리기다소나무림 1ha(2000그루 기준)를 벌채해 나오는 수익금은 100만원 선이다. 같은 면적에 참나무를 기를 경우 수익금은 10배인 1000여만원이다. 재질이 잘 갈라지는 약점이 있어 t당 목재 가격도 6만2000원으로 재래종 소나무(17만4000원)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산림청은 한곳에 리기다소나무림이 200ha(60만평) 이상 집단적으로 조성돼 있는 6개 시.군의 1793ha에 대해서는 벌채 경영 모델 산림을 조성, 임업인들을 위한 시범 교육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해당 지역은 ▶경기 화성군▶강원 철원군▶충북 보은군▶충남 홍성군▶전북 진안군▶전남 순천시 등이다.

대전=최준호 기자

◆ 리기다소나무(Pitch Pine)=우리나라와 위도가 비슷한 미국 동북부의 북위 35~45도 지역이 원산지인 침엽수다. 잎이 2개씩 모여 있는 재래종 소나무와 달리 3개씩 한 곳에 붙어 있어 '미국삼엽송(三葉松)'이라고도 불린다. 재래종 소나무보다 가지가 넓게 퍼지며 자라고, 줄기와 가지에 싹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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