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리 척결 명분 아래 기본권 침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사학법 개정안의 위헌 논란은 지난해 열린우리당의 법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한 이후 계속돼 왔다. 9일 국회에서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찬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 개방형 이사제는 재산권 침해(위헌)=개정 사학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가장 문제삼는 것은 '재산권 침해' 부분이다. 사립학교는 학교법인의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는 "사학 법인은 헌법의 기본원리인 재산권의 보장을 받아야 할 주체"라며 "개방형 이사제는 사학 법인의 학교 운영권을 제한하고, 이는 곧 헌법상 보장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법인 이사회 구성원의 4분의 1 이상을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한 사람으로 강제하는 것은 마치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옆집에서 추천한 한두 사람이 꼭 끼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조전혁 인천대 교수도 "주식회사에서 사원이 경영권을 공유하자고 하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라며 "학교의 설립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이사회를 구성할지는 학교 법인의 권한이지, 외부에서 강제하거나 내부 구성원이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과잉 금지 원칙에 어긋나(위헌)=이석연 변호사는 "비리 사학 척결이라는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그 방법이 적절치 않다"며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을 제한할 때도 본질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사학의 비리는 기존 법만 제대로 집행해도 막을 수 있다"며 "개정 사학법은 사학 비리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사학 법인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우리 사회의 기본 토대를 흔든다"고 말했다. 숭실대 강 교수는 이사장의 배우자와 혈족의 학교장 취임을 금지한 조항에 대해서도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와 연좌제 금지에 어긋난다"며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 공공복리 위해 제한 가능(합헌)=사학의 자율성보다 공공성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사학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박병섭 상지대 교수는 "헌법에 따르면 국민의 기본권도 국가 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며 "사학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개방형 이사제가 이사회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는 정도라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겨우 4분의 1을 2배수로 추천할 뿐이고, 최종 선임은 여전히 법인이 한다"며 "권리의 본질적인 것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한성 연세대 교수는 "헌법 31조 4항에 따르면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로 보장된다'고 규정돼 있다"며 "따라서 교육기관의 자율성도 국회에서 만든 법에 의해 한계가 정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학교는 일반 기업과 달리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사립학교에 대해 '재산권'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 사학 집단 반발로 교육 당국 비상=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학법이 개정됨에 따라 사학 법인들은 학생 배정 거부 등 집단행동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는 12일 16개 시.도회 회장단 모임을 열고 집단행동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 협의회 이현진 부장은 "사학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개정이 강행된 만큼 신입생 배정 거부, 학교 폐쇄 등 수순을 밟아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대학법인협의회.전문대학법인협의회 회장단도 10일 모임을 열고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학교를 폐지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 교육인적자원부는 12일 시.도 교육감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협의키로 했다. 이 회의에서 사학 관련 단체들의 움직임을 점검하고 학생 배정 거부, 학생 모집 중지, 학교 폐쇄 등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