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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창구가 무색… 채권액 눈치싸움|아파트 분양신청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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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46평으로 할까, 55평으로 할까』 『어차피 우리가 살집이 아닌데 기왕이면 큰것(55평형) 으로 하지』지난 17일 하오4시 주택은행 반포지점 신동아아파트 분양신청 접수창구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던 지모씨(45·서울 이태원동)와 부인 서모씨(42)가 주고받는 말이다.
서씨는 반포동 Y개발에서 나온 이모씨(25)에게 『채권입찰액을 얼마나 써넣어야 하느냐』고 애원조로 물었다. 이씨는『1천6백만∼1천8백만원이면 무난할 것 같다』며 윗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주면서 『당첨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부동산소개소에서 나온 이씨는 신청자들을 기웃거리며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명함을 돌렸다.
도봉구 월계동에서 반포지점까지 온 정모씨(35·여)는 지난 12일 분양된 가락동 현대아파트 31평형 신청시 1천5백만원의 채권입찰액을 써넣었다며 『1백만원만 더 써넣었으면 무난히 당첨되는건데 떨어지게 됐다』고 울상을 지었다.
아직 당첨자 발표는 없지만 부동산업계 주변에 나도는 소문이 정확하다는 것이 정씨의 굳은 믿음이다. 정씨는 부동산 소개업자인 민모씨(28)에게 아예 신청서를 내맡기면서 『알아서 적어달라』고 했다.
l7일 분양된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의 분양가격은 46평형이 6천2백47만원, 55평형이 7천3백96만여원. 여기에다 2천만원에 육박하는 채권매입액을 합하면 9천만원이 훨씬 넘는다. 채권매입액이 너무 높다는 홍모씨(43·여· 서울 도곡동) 의 말에 K개발직원 김모씨(26)는 『2천만원정도를 망설여 어떻게 돈을 벌겠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김씨는 『목동·신정동에 채권입찰제가 도입 될 경우 그곳의 채권매입액은 엄청나게 쥘것』이라며 『「5당4락」을 생각하면 2천만원 정도는 그리 비싼편이 아니다』고 했다. 「5당4락 이란 대형 인가아파트의 경우 5천만원을 써넣으면 당첨되고 4천만원이면 떨어진다는 부동산업계의 신종유행어.
모델하우스와 접수창구를 메운 사람들은 색색의 레인코트를 걸친 중년부인들이 대부분.
신청자의 절대다수가 서울시내 71개 주택은행지점 가운데 반포·신반포·여의도등 3∼4개 지점에 몰리고 있는것은 이곳에서 써넣는 채권매입액이 바로 당락을 결정짓는 커트라인이 되기때문.
이때문에 경험이 없는 실수요자의 경우 자신이 살고있는 동네지점에서 임의로 써넣었다가 낙첨되기 일쑤다.
그러나 최근들어 아파트분양의 겅쟁률이 높아지자 채권매입액수를 낮게 기입하라는 바람잡이」들도 등장하고있다. 그래서 가족들이 총동원, 4∼5개 지점으로 나뉘어 서로 그쪽 상황을 연락, 완전무결을 구하는 신종방법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다른 분양신청자의 채권기입액수에 민감한 접수창구는 흡사 눈치와 배짱이 만발하는 대입접수창구와 같다.
『남들보다 훨씬 높은 채권입찰액을 써넣으면 마음놓고 당첨은 되겠지만 상환기간이 20년이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매입된 채권은 시중에서 할인, 현금화된다. 지난해의 할인율은 13%선이었으나 올들어 금리가 다소 인상돼 14.5%에 할인된다. 2천만원어치의 채권을 샀을 경우 요즘 시세로 치면 2백90만원으로 교환된다는 것이다. 실수요자나 전문투기꾼 모두의 경우 유휴자금이 없는 경우 입주자금을 마련키위해 채권시장에 싼값에 내다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남편이 회사원인 이의순씨(29·서울 노량진동)는 『남편의 월급에서 매달 10만원씩을 떼어·국민주택 선매청약예금을 들고있다』며 1억원에 가까운 대형아파트를 구하려고 줄을 서있는 광경을 보니 자신이 초라해진다며 은행문을 나섰다.
요즘 대형아파트를 「맨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시골뜨기라는 말을 듣는다. 억대에 이르고있기 때문에 「억션」이라고 해야 제대로 행세하는 복부인이란다.
신규아파트 분양에 신청자들이 몰려 평균2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데 대해 서울 반포동 D개발 이모씨 (43)는 ▲신규아파트의 분양가격이 기존 아파트보다는 20∼30%가 싼편이고 ▲위치에 따라 높은 프리미엄이 예상되며 ▲입주까지의 1년여동안 분할납입제이기 때문에 자금회전이 용이하다는 점 등으로 풀이했다.
지난해 5월 분양된 한양 압구정동 69평형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 9천2백46만원에 채권값 6천만원, 여기에 프리미엄이 6천만원이 붙어 실제값은 2억1천만원에 거래됐다. 개포동 우성65평형도 분양가는 8천7백10만원인데 채권값 5천만원, 프리미엄이 6천만원이 붙어 2억원을 홋가하고 있다.
또 지난해 5월 분양된 개포동 현대1차는 오는9월 입주예정. 3천만∼3천5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매물이 나와있으며 강북이지만 한강을 끼고있어 경관이좋은 서빙고동 신동아1차 (지난해6월분양)와 2차(지난해 8월분양)의 로열층은 6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불어있으나 매물이 없는 실정.
비로열층도 입주가 7월로 예정되있어 3천만∼5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불어 나돌고있다.
17일 분양된 신동아3차는 당첨발표가 나기도 전에 이미 로열층 1천2백만원, 비로열층 7백만∼8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있다. <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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