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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워킹맘의 두 번째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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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수련
경제부문 기자

“유은지씨, 입사하면 임신은 언제쯤?”

 “아, 그게요. 임신은….”

 “결혼 3년째라면서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난해 가을 국내 대기업 A, ‘경단녀(경력단절 여성)’ 유은지(가명·33)씨의 최종 면접장. 면접 끝 무렵 임원이 훅 던진 질문이 유씨의 가슴을 후벼 팠다. 망설임 끝에 유씨는 난임(難姙) 사실을 설명했다. 찾아오지 않는 생명을 기다리다 재취업을 결심한 지 1년,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유씨가 이 회사에 다니면서 난임 시술을 받으러 다닐 수 있을까, 그가 남자였다면 저런 질문을 받았을까.

 가임기 여성에게 이토록 냉혹한 A 같은 기업들은 워킹맘에게도 힘든 일터일 가능성이 크다. 가정과 회사 중에서 택일을 강요하는 조직문화에선 드라마 ‘미생’의 신 차장처럼 수많은 워킹맘이 눈물을 훔친다.

 이들 입에선 “죄송하다” “감사하다”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진다. 시댁·친정·직장 선후배에게 감사하고 죄송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친다. 워킹맘이니 특별히 봐준다는 누군가의 생색을 짐짓 모른 체하거나 못 알아들으면 그것도 약점이다. 눈치 없거나 목이 뻣뻣한 사회성 부족 아줌마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업무 성과로 평가받고 싶은데 자꾸 회사에선 일하는 ‘엄마’의 한계만 들추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러면 남자 직원들은? 이런 직장에 ‘워킹대디’라는 개념이 있을 리 없다. 육아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회사원’만 있을 뿐, 일하는 ‘아빠’는 잘나가기 어렵다.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이 화제가 되는 직장이 여전히 수두룩하다. 아무도 배려해 주지 않는 워킹대디의 부성은 사회적으로 거세됐다. 이들도 어느 워킹맘의 남편일 텐데…. 직장 내 특별대우는 워킹대디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이중적 시선을 이겨내는 고전적 방법은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많은 선배 워킹맘이 그렇게 동토에 씨를 뿌렸다. ‘최초의 여성 OOO’들에겐 남자보다 더한 워커홀릭, 여장부 스타일 같은 수식어가 뒤따른다.

 하지만 이런 워킹맘 신화의 감동은 점점 덜하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건 경단녀의 창업 스토리다. 액세서리 제작업체 고봉화제작소의 고봉화(37) 대표는 김포 아파트단지 전업주부들을 채용해 1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기회는 늘고 있다. 며칠 전 테헤란로에 문을 연 창업공간 ‘구글 캠퍼스 서울’엔 엄마를 위한 창업 프로그램도 있다. 창업 후 기업을 궤도에 올려놓기까지 무수한 난관이 있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최소한 입사 면접에서 임신 무계획 의사를 확인하는 기업보다야 낫지 않을까.

박수련 경제부문 기자